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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 실험, 달러패권 도전 아닌 보조금 지급 용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중국, 비트코인 때린 까닭

중국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쇼핑몰의 한 매장 계산대에 놓인 디지털 위안화 결제 단말기. 디지털 위안화( 數字人民幣, e-CNY) 사용을 환영 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신경진 기자

중국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쇼핑몰의 한 매장 계산대에 놓인 디지털 위안화 결제 단말기. 디지털 위안화( 數字人民幣, e-CNY) 사용을 환영 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신경진 기자

중국이 최근 비트코인을 때린 배경으로 ‘디지털 위안화(e-CNY)’ 도입이 거론된다. 디지털 위안화는 디지털 형식의 전자결제용 위안화다. 디지털 화폐와 전자 지불을 합친 개념으로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라 불리기도 한다. 현금을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를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개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왜? 국내에선 디지털 위안화를 미국의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이 때문에 정작 재정지원금 지급 수단으로서의 디지털 위안화 중요성에 주목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코인 아닌 계좌기반 디지털 화폐 #글로벌통화 주권 확보 목표보다 #지원금 지급 수단으로 역할 중요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분리돼 운영되는 디지털 위안화의 등장은 위안화 국제화와 달러화에 대항하는 글로벌 통화주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디지털 위안화는 미 정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존 글로벌 결제시스템 활용의 금융제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대립이란 최근 국제정치 상황으로 인해 디지털 위안화가 지나치게 민감한 정치·경제적 이슈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결제 수단으로 활용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일상적인 금융거래 사용에서도 제약이 많아 현금뿐 아니라 위챗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 플랫폼들을 대체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첫째, 지난 수년간 디지털 화폐(이하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와 관련한 논의 중에선 ‘CBDC를 비트코인과 유사한 형태로 거래되지만, 그 가치는 안정화된 일명 스테이블 코인으로 가정하고 국제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만약 CBDC가 코인(또는 토큰형 CBDC)으로 발행돼 개별적인 지급수단(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치를 가진 전자적 정보로 존재한다면 비트코인과 같이 전 세계 어디서나 비밀번호만 입력해 자유롭게 거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는 반드시 기존 은행의 금융계좌에 연계된 모바일 전자지갑 형태로만 발행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론 계좌기반의 CBDC라는 게 확인됐다.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결제대금이 부족하면 디지털 위안화에 연계된 본인의 은행계좌에서 예금이 자동으로 인출돼 결제된다. 현재 중국의 알리페이나 한국의 카카오페이에서 은행계좌를 연계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중국농업은행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의 실제 사용 화면. [웨이보 캡처]

스마트폰에 설치된 중국농업은행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의 실제 사용 화면. [웨이보 캡처]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위안화는 디지털 화폐이면서 동시에 모바일 결제 플랫폼 앱(App)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존 모바일 플랫폼과는 달리 디지털 위안화는 자신의 은행계좌로 이체하는 건 제한한다. 이러한 계좌기반의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결제 수단이 되기 위해선 ① 중국 내 지급결제 계좌 정보 ② 해당 국가의 지급결제 계좌 정보, 나아가 ③ 국제결제 청산 시스템에서 국가 간 계좌의 지급과 결제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가 승인되는 복잡한 국제금융 및 국제정치적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위안화 실험과정에서 확인된 CBDC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가 분산원장(거래정보 데이터를 여러 기관이나 저장 장소에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 방식의 개인 스마트폰 간 거래 문제였다. 실험과정 중 지급결제 망을 통하지 않는 ‘펑이펑(碰一碰)’ 기능이 소개되면서 이 기능이 마치 현금처럼 개인의 스마트폰 간에 결제 망을 통하지 않고도 디지털 위안화를 거래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 실험이 진행되면서 지급결제 기능에 기존 모바일 결제 방식인 QR 코드 방식 외 NFC(비접촉 근거리 통신) 방식이 추가됐고, 이것을 ‘펑이펑’이라 지칭했다. NFC 방식은 스마트폰에서 발생한 지급정보가 먼저 결제 망을 통하지 않고 POS 단말기에 직접 전달되는 일종의 분산원장 기술이 적용된다.

그렇지만 디지털 위안화의 펑이펑 기능은 쌍방 모두가 결제망에 접속하지 않는(雙離線) 개인 간 스마트폰 거래, 예를 들면 비트코인 방식의 완전히 분권화된 분산원장 거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향후 디지털 위안화 기술이 더 발전해 현금처럼 결제 망을 통하지 않는 개인 간 스마트폰 거래 기능도 도입될 것이란 전망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는 디지털 위안화의 정책적 목표는 현금거래나 위챗페이의 개인 간 송금 서비스를 대체하는 게 아니고, 재정지원을 통한 소비 확대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 목적으로 소매결제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세대교체, 그리고 정부의 재정집행 역량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모바일 지급결제 사용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에 일부 매장에선 거스름돈이 준비되지 못하는 등 현금 사용 시 불편함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결제에 현금처럼 언제든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해 결제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이 중국을 방문할 때 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디지털 위안화를 스마트폰에 넣어서 상점이나 택시를 이용할 경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거대한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로 지방정부의 재정지출 비중이 중앙정부의 재정지출보다 높다. 2019년 기준으로 정부 재정예산 집행의 85%를 지방정부에서 진행한다. 지방정부 차원의 소액 재정지출에 대한 재량권도 높은 편인데, 지방정부 차원에서 집행하는 복지나 지원금 등의 예산집행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곧잘 부정부패로 연결되곤 했다. 또 재정집행의 행정적인 절차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문제도 있었다.

따라서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해 재정집행의 목표 개인들에게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복지예산이나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디지털 지급 수단을 보유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정책적 목표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를 지나치게 국제정치적인 이슈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BIS를 포함한 국제 금융기관에서 강조하고 있는 CBDC의 도입과 국제 연계의 필요성, 한국은행의 ‘동전 없는 사회’와 같은 스마트폰 시대의 결제 환경 개선 중요성과 세계 금융환경의 변화 등을 간과하게 할 우려가 있다.

디지털 위안화 실험과 한국은행의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

중국 정부의 디지털 위안화 도입 이유를 알리페이의 모바일 지급결제 독과점 문제와 개인 금융정보 데이터의 확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디지털 위안화에선 현금거래나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대체할 만큼의 경쟁력이 보이지 않는다. 현금만큼 익명성이 확보된 것도 아니고 모바일 결제와 연계된 다양한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위안화를 보조적인 정책적 용도가 아니라, 전면적이고 유일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우선 현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시스템 운영비용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민간 모바일 결제회사처럼 개인 맞춤형 광고와 연계된 O2O 수익모델이나 데이터 기반 사업다각화 전략을 추진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015년부터 추진 중인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은 정부의 정책목표와 집행예산의 가성비 문제와 관련해서 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이 사업은 편의점 등에서 현금결제 시 잔돈을 개인 스마트폰 전자지갑 계좌에 이체시켜 주는 사업이다. 동전 발행비용의 절감, 가맹점들의 동전 준비, 동전 소지의 불편함과 같은 정책목표에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프라인 신용카드 결제가 보편화해 있는 한국에서 이 정책의 기대성과가 높지 않아, 사업 추진과 홍보 등에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 역시 디지털 위안화 사업 추진에서 예산투입 대비 정책효과를 고려할 것이다. 원래 ‘현금 없는 사회’라는 용어는 알리페이가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제시한 기업 전략목표였다.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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