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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1765조 가계빚…금리 오르면 경제 뇌관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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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은행이 풀어야 할 통화정책이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됐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가계빚의 폭발력이 더 커진 탓이다.

한은, 물가상승에 금리정책 고민 #가계부채 폭탄, 고물가 우려 커져 #섣부른 긴축 땐 회복 경기에 찬물 #내일 금통위 ‘금리 시그널’ 주목

1분기 가계빚이 1765조원을 돌파했다. 자산시장 과열에 따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의 영향이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765조원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931조원)과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735조원) 등을 합한 수치로 1년 전보다 154조원(9.5%), 전 분기보다 37조6000억원(2.2%) 늘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이나 보험 등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액 등 외상 구매액(판매신용)을 합한 것으로 전반적인 가계빚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송재창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장은 “지난해 1분기 이후 주택 매매와 전세거래 자금 수요가 이어지며 주택담보대출이 꾸준히 증가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생활자금 수요와 주식투자 수요가 발생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빚투’에 가계빚 사상 최대, 1년새 154조 늘어 속도도 빨라

빚투와 영끌 속 1분기 가계빚 1765조원 증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빚투와 영끌 속 1분기 가계빚 1765조원 증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빚도 늘어난다. 빚의 총량이 커지다 보니 증가 폭도 사상 최대를 경신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속도다. 1분기 가계빚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9.5%다. 금융위원회가 설정한 올해 관리 목표치(5~6%)를 훌쩍 웃돈다.

여기에 시중금리는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5일 연 1.142%를 기록했다. 올해 초(1월 4일 0.954%)와 비교하면 0.188%포인트 올랐다. 더 큰 문제는 금리 변동에 취약한 한국의 가계빚 구조에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은행 대출(잔액 기준)에서 변동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70.5%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가계빚이 그 직격탄을 맞는 약한 고리란 의미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한국은행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기는 회복세다. 27일 한국은행이 내놓을 경제수정전망치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될 전망이다. 3.0%로 예상했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3% 후반대, 기존의 1.3%던 물가상승률도 1% 후반대로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도 지난달 10년 만에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소비심리도 5개월 연속 개선되고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2.3% 오르며 3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PI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지난달 5.6% 상승하며 인플레이션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5월 기대 인플레이션도 2.2%를 기록했다.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이 바뀔 기미도 엿보인다. 최근 공개된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4월 의사록에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긴축을 향한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한 부동산과 주식시장, 암호화폐 등 자산시장 과열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지난 4일 공개된 4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완화적 금융 상황이 지속하며 민간 부문의 레버리징(차입금) 확대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금융 불균형 누적 위험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섣부른 긴축 모드로의 전환은 간신히 회복 궤도에 발을 디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만큼 한은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고차방정식을 풀 첫 번째 시험대는 27일 열리는 금통위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폭증을 미리 관리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금리 인상의 충격에 무방비로 당할 수 있다”며 “한국은행이 강한 긴축 시그널(신호)보다는 ‘현재의 통화 완화 정도가 너무 심하니 신경을 쓰겠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윤상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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