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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서 써보니 좋던데 사갈까, 베개·향수·커피 ‘호텔PB’ 인기

중앙일보

입력

김현옥(44·서울 도봉구)씨는 지난해부터 호텔에서 나온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꽤 많아졌다. 김치와 침구류, 목욕가운, 디퓨저(방향제) 등이 대표적이다. 김 씨는 “가족들과 호텔에서 숙박했을 때 썼던 제품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따로 사서 쓰고 있다”며 “다른 건 몰라도 리빙 제품은 호텔 브랜드가 잘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글래드 호텔의 침구 모습. 최근 수면 전문기업과 협업해 '꿀잠 제품'을 내놨다. 사진 글래드 호텔

글래드 호텔의 침구 모습. 최근 수면 전문기업과 협업해 '꿀잠 제품'을 내놨다. 사진 글래드 호텔

호텔의 영역이 숙박에서 쇼핑으로 넓어지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와 규모를 비교할 순 없지만 자체적으로 만들어 상표를 붙인 ‘자체 브랜드(PB, Private Brand)상품’의 종류를 점점 늘려가는 추세다.

호텔 기분 집에서도 느끼고 싶어 

여기엔 코로나19 확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이나 나들이도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되자 ‘호캉스(호텔+바캉스)’ 수요가 급증했고, 호텔에서 좋았던 경험을 집에서도 느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고급 호텔들의 경우 내국인 고객들이 코로나 사태로 급감한 외국인 숙박객의 빈자리를 약 70~80%까지 채우고 있다.

주로 고급호텔들이 선보이는 PB상품의 가격은 싸지 않다. 하지만 억눌린 소비가 명품 등 고가의 제품에 집중되는 데다 하나를 사더라도 마음에 드는 물건에 돈을 쓰는 일명 ‘가심비’ 소비 현상이 늘면서 ‘호텔표 상품’의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품들은 호텔업의 특성상 침구류·목욕용품·먹거리·방향제 등 일상용품이 많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선뜻 지갑을 열기 좋다.

코로나 후 판매량 3~5배 증가

플라자 호텔의 대표 향기인 유칼립투스 디퓨저(왼쪽)와 순면으로 만든 유야용 목욕가운. 사진 플라자 호텔

플라자 호텔의 대표 향기인 유칼립투스 디퓨저(왼쪽)와 순면으로 만든 유야용 목욕가운. 사진 플라자 호텔

서울시청 앞에 자리 잡은 플라자 호텔은 호텔 앞글자를 딴 ‘P컬렉션’이란 자체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호텔을 대표하는 유칼립투스 향을 담은 디퓨저와 실내나 옷, 침구류 등에 뿌리면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스프레이, 순면으로 만든 유아용 목욕 가운, 곰 인형까지 다양하다. 이 중 디퓨저는 1년 전보다 매출이 30% 가까이 늘었다.
플라자 호텔 내 PB상품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호텔에서의 기분을 집에서도 느끼고 싶어하는 고객이 많아졌다. 고급화와 브랜드 감성이 핵심”이라며 “PB상품을 다양화하기 위해 이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전문가 집단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그니엘 호텔의 '워크 인 더 우드(A Walk in the Wood)' 디퓨저(왼쪽)와 경남 하동에서 공수한 차로 만든 천연 입욕제. 사진 롯데호텔

시그니엘 호텔의 '워크 인 더 우드(A Walk in the Wood)' 디퓨저(왼쪽)와 경남 하동에서 공수한 차로 만든 천연 입욕제. 사진 롯데호텔

최근 집안 꾸미기 트렌드는 가구를 넘어 향수 제품을 활용한 ‘향 인테리어’로 세분화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롯데호텔이 운영하는 시그니엘 호텔은 호텔 로비의 향을 담은 ‘시그니엘 디퓨저’를 선보였다. 은은한 나무 향이 나는 이 방향제는 올 들어 4월까지 판매량이 1년 전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시그니엘 호텔 관계자는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은 내부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재구매 고객들이 많아 최근 격월로 1병을 배송해 드리는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워커힐의 대표 가정간편식(왼쪽)과 호텔 자체 김치 연구소에서 만든 '워커힐 수펙스 김치'. 사진 워커힐

워커힐의 대표 가정간편식(왼쪽)과 호텔 자체 김치 연구소에서 만든 '워커힐 수펙스 김치'. 사진 워커힐

워커힐은 호텔 식당에서 판매하는 먹거리를 가정간편식(HMR)으로 만들었다. ‘명월관 갈비탕’ ‘온달 육개장’ ‘워커힐 곰탕’ ‘워커힐 수펙스 김치’ 등이다. 이들 가정간편식은 코로나 사태로 집안 생활이 길어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 갈비탕은 지난 1월 판매량이 1년 전보다 5배 증가한 1만200개가 팔렸고, 지난 2월 중순에 나온 곰탕은 5월 현재 8500개 넘게 팔렸다. 이에 워커힐 측은 PB상품의 판매 채널을 호텔 온라인 쇼핑몰뿐 아니라 장보기 앱(애플리케이션)인 마켓컬리로 넓혔다.

숙박업에서 라이프 브랜드로 변신 

커피와 주류도 빠질 수 없다.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은 호텔의 수석 바리스타가 브라질·에티오피아·코스타리카 지역의 프리미엄 원두를 섞은 ‘디골드(D GOLD)’를 판매 중이다. 유인석 수석 바리스타는 “1년 넘게 테이스팅 과정과 원두 선별 작업을 통해 PB 커피 원두를 출시하게 됐다. 고소한 맛 중심인 대중적인 커피 외에 마셨을 때 오래 기억에 남을 특별한 커피를 선보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호텔의 ‘I’ 로고를 닮은 길고 좁은 전용 잔에 담겨 나오는 PB 수제 맥주인 ‘아트바이젠’과 ‘아트 페일 에일’도 만들었다.

이 밖에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가 목욕용품·침구·타월 등으로 만든 ‘해비치 콜렉션’, 글래드 호텔의 ‘글래드 머그잔’ ‘글래드 담요’, 라이즈 호텔에서 출시한 의류와 반려동물용 목욕가운 등 호텔표 상품의 종류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박부명 워커힐 호텔 파트장은 “코로나를 계기로 호텔은 투숙하는 공간만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PB상품이 당장 전체 매출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걸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업분야”라며“호텔마다 고유한 호텔 브랜드의 맛·분위기·서비스를 담은 자체 브랜드 상품 개발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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