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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 청년의 생존본능” 인구절벽 쓰나미 진짜 해법은?

중앙일보

입력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 뉴노멀 포럼' 포스터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 뉴노멀 포럼' 포스터

4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서울시 7급 공무원에 합격해 올해 처음 출근한 이모(29)씨는 최근 ‘인생 설계’에 대한 고민이 크다. 자신을 ‘캥거루족’(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세대)이라 설명한 이씨는 “그토록 원했던 취업에 성공해도 미래가 막막한 건 달라지지 않았다”며 “아무리 월급을 모아도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 얘기를 접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생존 본능’이 낳은 미래의 과제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제2회 뉴노멀 포럼'이 열렸다. '인구절벽 쓰나미가 온다: 세대갈등의 서막'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가람 기자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제2회 뉴노멀 포럼'이 열렸다. '인구절벽 쓰나미가 온다: 세대갈등의 서막'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가람 기자

이씨와 같은 청년 세대의 고민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막막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인구구조를 변화시켜 세대 간의 갈등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사회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2회 뉴노멀 포럼’에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나타날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인구절벽으로 인한 세대 갈등’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과제로 진단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요소들은 많지만,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이 만든 정해진 미래다”라며 “치솟는 집값과 취업난, 취약한 보육환경, 그리고 경쟁을 심화시키는 사회분위기가 젊은층에게 재생산(출산) 본능보다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구변동으로 인한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이나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 등이 눈앞에 놓여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가 경쟁을 피하고 생존할 수 있는 ‘공존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주거·건강 등 다중위험 처한 청년들” 

포럼에서는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청년정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한창근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오늘날의 청년 세대를 ‘다중 위험을 경험하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첫 직장이 1년 이하의 계약직일 확률과 청년가구의 자가비율, 자살률 등을 봤을 때 청년세대는 고용과 주거, 건강 등 여러 방면에서 위험 상황에 놓여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수많은 청년 정책이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진단이다. 한 교수는 “기존의 정책에 ‘청년’이라는 단어만 붙인 방식의 청년 정책들이 많다”며 “오늘날 청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다중위험을 경험하는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출산 장려 홍보 아닌, 비용·이익 구조 바꿔야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제2회 뉴노멀 포럼'이 열렸다. 이가람 기자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제2회 뉴노멀 포럼'이 열렸다. 이가람 기자

발제가 끝난 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전문가들이 인구 감소와 청년 정책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정형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는 게임 이론으로 세대 갈등을 분석했다.

정 교수는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산 장려 홍보가 아닌, 개인이 감당해야 할 비용과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결혼을 결심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 크고 아이를 낳는 것이 기대이익보다 비용이 더 큰 상황에서는 저출산의 추세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위스에서 연금수령 연령을 상향하는 국민투표가 2000년 이전에는 통과되었으나 2017년에 부결된 사례를 들며 “인구구조의 변화가 고령화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계 교수는 스위스의 국민투표 변화가 은퇴를 앞둔 연령의 집단 크기가 많이 증가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했다.

“청년 정치 참여 높여 문제 해결해야”

이러한 청년 문제의 해결책이 ‘청년 정치’에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한국의 국회는 세계적으로 청년의 대표성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며 “청년의 정치 참여를 양적·질적으로 높여 청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국가 미래적으로 중요한 과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교육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방향은 청년 세대의 정치세력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수경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현금을 주고, 신혼부부에게 집을 주겠다는 식의 청년정책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며 “4차 산업혁명이 만든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가 ‘청년’이라는 약한 고리를 뚫고 드러난 것이 오늘날 청년문제의 본질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저성장 시대에 한정된 파이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지, 정상가족만을 염두에 둔 저출산 정책이 지속 가능한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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