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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그들의 코트에 있다" 공 받아든 北, 세가지 선택 저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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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북ㆍ미 대화와 관련해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최근 새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는 미국의 대화 제의를 접수만 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북한의 선택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성 김' 등판에 '최선희' 재등장?

바이든 행정부 첫 대북 특사(special envoy to DPRK)로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기용된 건 미국 나름대로 북한에 대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계이자 대표적인 북한통인 성 김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는 2018년 6월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현 제1 부상)과 실무협상을 벌였다. 같은 해 8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부 장관 회의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이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사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사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 특사가 다시 북ㆍ미 대화 무대에 등장하면서 과거 카운터파트이자 대미 협상을 전담해온 최선희 외무성 제1 부상이 존재감을 드러낼지도 관심이다. 다만 직전 대북정책 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해 7월 최 제1부상에 대해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부정적"이라며 "협상 권한이 있는 다른 카운터파트를 임명해달라"고 날을 세운 바 있다. 북한 역시 차관급인 최 제1부상이 차관보 대행을 맡는 김 특사와 급이 맞지 않는다고 핑계를 삼을 수도 있다.

블링컨 "공은 北 코트에 있다" #세 가지 선택 저울질할 평양

북한이 김 특사 임명을 반기지 않을 거란 관측도 있다.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페이스북에 "성 김은 부시 행정부 때부터 북한 내에서 원칙론자로 알려진 인물"이라며 "북한은 비건과 같은 협상 역사를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고 여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성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성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②내치 집중하며 '무응답' 일관?

외교가에선 한ㆍ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북한이 곧바로 반응할만한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 계승 등 외교에 방점을 두겠다는 큰 틀의 원칙은 확인했지만, 대북 제재 해제 등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해선 구체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았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미 정부 당국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 정부와 다를 것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했는데, 실제로 어떨지에 대해선 굉장히 말을 아꼈다"고 지적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됐으니 북한에 잔말 말고 나오라는 것인데, 여기서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한다면 북한만 나쁜 쪽이 되는 셈"이라며 "이런 전략을 아는 북한이 대화 제의를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한·미 정상 확대회담을 하는 모습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한·미 정상 확대회담을 하는 모습 [뉴시스]

③미사일 도발로 반발?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 문제가 포함되고, 한ㆍ미 미사일 지침 해제 합의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약이 사라졌다는 대목을 놓곤 북한이 도발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북한은 앞서 지난 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인권은 곧 국권"이라며 "미국이 인권을 내정간섭의 도구, 제도전복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미ㆍ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상대적으로 밀착한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 미국과 당분간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이때문에 북한이 조만간 대미 담화 등을 통해 '새로운 셈법은 내놓지 않고, 말만 앞섰다'는 취지로 반발하거나 미사일 도발 등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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