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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그물에 걸려 흰 뼈만···해양생물 SOS, 바다기사단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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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바다 아래 폐그물에 걸려 죽은 물고기가 뼈만 남은 모습. 2021년 4월 강원도 고성 인근 바다에서 촬영했다.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바다 아래 폐그물에 걸려 죽은 물고기가 뼈만 남은 모습. 2021년 4월 강원도 고성 인근 바다에서 촬영했다.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실처럼 얇은 그물에 걸려 흰 뼈만 남은 물고기. 제주도 앞바다에서 폐어망에 걸려 죽은 볼락, 버려진 밧줄이 붙어 대머리처럼 벗겨진 산호, 입에 바늘이 꽂힌 채 헤엄치는 방어…

다이빙팀 ‘팀부스터’의 물속 고발 #디자이너·약사·회사원 등 8명 #해양 쓰레기 생물피해 사례집 내 #“폐그물에 죽은 물고기 너무 많아”

우리나라 삼면을 둘러싼 바닷속, 버려진 그물과 통발에 걸려 죽어가는 해양생물을 찍은 사진들이다. 해양환경단체 ‘오션(OSEAN)'과 다이빙팀 '팀부스터'가 지난 4월 펴낸 ’해양쓰레기 생물피해 사례집 2‘에 이처럼 인간이 내버린 쓰레기에 고통 받는 해양 생태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오션 해양쓰레기 생물피해 사례집 2. 자료 OSEAN

오션 해양쓰레기 생물피해 사례집 2. 자료 OSEAN

사례집에 실린 사진 대부분은 팀부스터 회원들이 촬영해 제공했다. 팀부스터의 곽태진(42·소프트웨어 개발자)씨는 "지난해 오션의 낚시 쓰레기 조사 작업에 참여하다 '물에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쓰레기가 있다'며 그동안 수중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니 단체에서 자료로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사례집엔 2013~2020년까지 팀부스터가 다이빙 중 촬영한 사진 43점이 담겼다. 오션 측은 "자료집에서 나온 사례는 최소한의 피해일 뿐, 기록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더 많다"고 밝혔다.

취미로 시작한 다이빙, 바닷속 쓰레기 '증거' 모아 

바위 위에 알을 낳은 뒤 바로 앞에 있는 통발에 갇힌 노래미. 2021년 2월. 사진 팀부스터 곽태진

바위 위에 알을 낳은 뒤 바로 앞에 있는 통발에 갇힌 노래미. 2021년 2월. 사진 팀부스터 곽태진

팀부스터는 디자이너, 약사, 회사원, 구급대원, 공무원 등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다이버 8명으로 구성됐다. 취미로 다이빙하던 이들은 지난해 10월 모임을 꾸리고 6주마다 한 번씩 바다에 들어간다.

팀원들은 "버려진 그물에 갇힌 채 죽은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물에 들어갈 때마다 본다"고 입을 모았다. 통발에 걸린 물고기가 죽으면, 그 살을 먹으려고 다른 고기가 몰려들어 이들 역시 통발에 걸리는 식의 악순환도 반복된다고 전했다.

다이빙팀 팀부스터 회원들. 산소와 질소, 헬륨을 함께 사용하는 트라이믹스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사진 팀부스터 제공

다이빙팀 팀부스터 회원들. 산소와 질소, 헬륨을 함께 사용하는 트라이믹스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사진 팀부스터 제공

다이버들의 눈에 해양생물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버려진 그물이었다. 해저지형이 험해 그물이 많이 걸리는 동해안은 물론이고, 남해 해상국립공원 바닥에도 폐그물이 널려있었다고 이들은 전했다.

강경빈(39·약사)씨는 지난 4월 강원도 고성 바닷속에서 얇은 그물에 돌돌 감겨있는 도치를 발견하고 칼로 그물을 끊고 구해줬다. 강씨는 "칼로 그물을 끊는 동안에도 물고기가 그물에 쓸려 아파서 입을 뻐끔거리며 아파하는 표정이 너무 생생하다"며 "다행히 살아 헤엄쳐 나갈 수 있는 상태였지만, 살펴보니 몸통에 그물 자국이 잔뜩 나 있었다"고 말했다.

바다 밑에 버려진 통발 안에 도루묵 떼가 갇혀있는 모습. 통발 안의 도루묵 중 일부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고성 인근 바다에서 촬영했다.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바다 밑에 버려진 통발 안에 도루묵 떼가 갇혀있는 모습. 통발 안의 도루묵 중 일부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고성 인근 바다에서 촬영했다.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폐그물에 걸려 죽은 물고기가 뼈만 남긴 모습을 촬영했던 다이버 김혜진(50)씨도 "바다에 들어가서 직접 보게 되면 해양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공원을 산책하는데 30초에 하나씩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보는 느낌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전했다.

팀부스터 회원이 얇은 그물에 걸려 갇힌 도치를 풀어주고 있다. 2021년 4월 강원도 고성.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팀부스터 회원이 얇은 그물에 걸려 갇힌 도치를 풀어주고 있다. 2021년 4월 강원도 고성.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폐그물에 갇힌 물고기를 발견해도 도구가 없거나 시간이 부족해 손쓰지 못하는 일도 잦다. 김씨는 "공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다이빙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어도 너무 안쓰러워 급히 그물을 끊어 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바닷속에서 얽히고설키며 덩치가 커진 폐그물 뭉치는 다이버 한두명이 제거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자칫하면 제거하려던 다이버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 곽씨는 “별도 장비를 설치한 뒤 끌고 내려가서 그물을 끌어올려야지, 사람이 끌고 오려다 되려 그물에 엉켜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몇몇 다이버 모임은 바닷속 폐그물 수거에 집중하고 있다.

얇은 그물에 걸려 있던 도치를 풀어준 뒤 찍은 사진. 몸통에 그물 자국이 찍혀 있다. 2021년 4월 강원도 고성.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얇은 그물에 걸려 있던 도치를 풀어준 뒤 찍은 사진. 몸통에 그물 자국이 찍혀 있다. 2021년 4월 강원도 고성.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취미로 시작한 모임이지만 팀부스터는 최근 해양 쓰레기의 실태를 알리고 대책을 촉구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산소, 질소, 헬륨 등 세 가지 혼합기체를 활용한 트라이믹스(Trimix) 다이빙을 할 수 있어, 일반 다이버보다 깊은 수심에 오래 머물면서 다양한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강씨는 "처음엔 취미로 한 다이빙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이 기록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회사원 김유라(41)씨도 "취미로 다이빙하면서 뭔가 유익한 일도 하고 싶었는데, 팀으로 모이니 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바다 속에 얽혀 가라앉은 거대한 그물 덩어리와 그 앞에 떠 있는 다이버. 2020년 7월 경남 홍도.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바다 속에 얽혀 가라앉은 거대한 그물 덩어리와 그 앞에 떠 있는 다이버. 2020년 7월 경남 홍도. 사진 팀부스터 김혜진

해양쓰레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폐어구는 바다 아래 가라앉은 뒤에도 물고기를 가두고 산호를 다치게 한다. 튼튼하고 오래가는 화학섬유로 만든 그물 등의 어구가 바닷속에서 오랜 기간 썩지 않고 남아 빚어지는 문제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이런 어업 관행을 '유령어업'이라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다이버들 기록로 생태 데이터로 만들고파" 

오션, 팀부스터, 오션카인드가 공동으로 출범한 '바다기사단' 로고. 팀부스터 홈페이지(teambooster.org) 캡쳐

오션, 팀부스터, 오션카인드가 공동으로 출범한 '바다기사단' 로고. 팀부스터 홈페이지(teambooster.org) 캡쳐

팀부스터와 오션, 오션카인드 등 해양환경단체는 공중‧수중‧해안 쓰레기를 모니터링하는 시민과학프로그램 ‘바다기사단’을 지난 3월 22일 출범했다. 오션은 유엔환경계획(UNEP)의 지원을 받아 어업인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를 시작했다.

다이버 그룹 팀부스터가 다이빙을 하며 해저에서 발견한 사례들을 모아 기록하는 아카이브 페이지 (https://teambooster.org/marinedebris). 지도를 기반으로 위치, 사진, 상황설명 등을 기록한다. 팀부스터 홈페이지 캡쳐

다이버 그룹 팀부스터가 다이빙을 하며 해저에서 발견한 사례들을 모아 기록하는 아카이브 페이지 (https://teambooster.org/marinedebris). 지도를 기반으로 위치, 사진, 상황설명 등을 기록한다. 팀부스터 홈페이지 캡쳐

팀부스터 멤버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곽태진씨는 개별 다이버들이 촬영하거나 관찰한 자료를 한데 모으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곽씨는 "프로젝트베이스라인(projectbaseline.org)란 해외 프로젝트처럼 지도를 기반으로 다이버들이 사례를 직접 올릴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 센터를 만들고 앱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해양쓰레기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 해외 프로젝트 '프로젝트베이스라인'의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자신이 물속과 해안에서 발견한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어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 업로드한다. 지도에 표시된 주황색 점이 쓰레기가 발견된 지점이다.

'해양쓰레기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 해외 프로젝트 '프로젝트베이스라인'의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자신이 물속과 해안에서 발견한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어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 업로드한다. 지도에 표시된 주황색 점이 쓰레기가 발견된 지점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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