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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문재인..임기말되어 미국편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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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미정상회담..바이든 정책에 한국이 동의하는 내용 #문 대통령 깜짝선물에 감동..결국 강대국 주도 현실 수용

지난 5월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답변하는 모습을 바이든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무단 전재

지난 5월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답변하는 모습을 바이든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무단 전재

1.한미정상회담은 재미 없지만 중요한 뉴스입니다. 지난주말 이후 관련 뉴스와 논평이 쏟아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회담 직후 SNS글(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에서 대만족을 강조했습니다. 통상 대통령은 임기말이 될수록 해외순방을 즐긴다고 합니다. 임기말이면 국내에선 인기가 떨어지면서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지는데..해외순방에선 극진한 예우도 받고 뭔가 레거시를 남긴다는 성취감이 든다고 합니다. 문재인도 그럴 겁니다.

2.‘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고 합니다. 정상회담이란..국가간 체면이 달린 문제이기에 최대한 모양새를 좋게 만들고..설혹 실패한 회담이라도 성공한 것처럼 꾸밉니다. 사실 정상회담은 냉정한 주고받기(Give and Take)의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제정치는‘만인대 만인의 투쟁’이기에..결국 강대국이 늘 유리하기 마련입니다. 이번 회담도 그렇습니다.

3.서로 주고받은 내용은 양국 정상이 기자회견에서 자기 입으로 자랑했기에 분명합니다. 문재인이 강조한 대목, 즉 얻은 것은..북핵문제와 코로나백신협력입니다.
첫째. 북핵문제는..‘미국이 판문점 선언(남북합의)과 싱가포르 공동성명(북미합의)을 승계’하고, 대화와 외교를 통한 대북접근에 ‘양국이 협력한다’입니다. 문재인이 가장 원하던 대목입니다. 김정은에게 약속한 관계개선을 인정해달라는 점. 대화를 중단하지말라는 점. 문재인이 다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입니다.

4.이 대목에서 미국이 선심을 보인 건 성 김(국무부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사로 임명한 것입니다.
한국계 성 김은 싱가포르 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입니다. 문재인은 ‘성 김 임명발표는 기자회견 직전에 알려준 깜짝선물’이라고 반겼습니다. 한국정부는 성 김을 특사로 희망해왔습니다. 미국은 북핵문제에 서두를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 임명을 미뤄왔는데..서프라이즈입니다.

5.그렇다고 바이든이 북한 문제에 호락호락하진 않을 겁니다. 성 김을 소개한 그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은 ‘김정은이 원하는 걸 모두 주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고, 김정은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 상응한 보상을 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변한 건 거의 없습니다.

6.둘째, 백신협력과 관련해선 여러가지를 합의했습니다. 삼성바이오가 모더나 백신 원액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위탁생산을 하고.. SK바이오사이언스가 노바백스와 백신연구개발에 협력하고..양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글로벌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등. 우리가 희망하던 것이기도 하지만..동시에 글로벌백신생산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정책과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7.이 대목에서도 미국이 선심을 보인 건..한국군 55만명을 위한 백신공급이라는 ‘깜짝선물’입니다.
원래 미국이 나눠주겠다는 백신은..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백신을 살 능력이 없는 나라를 지원하는 용도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국내정치용 호소에..‘미군과 접촉하니까..’란 명분을 찾은 겁니다. 애시당초 ‘스와프’ 운운하던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정책에 무지했거나 거짓말한 셈이죠.

8.반대로 미국이 얻은 것도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바이든이 회견장에서 한국기업 대표들을 지목하며‘땡규’를 연발한 미국내 투자 44조입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공장(19조)을, SK하이닉스와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공장(16조)을, 현대차가 전기차공장(8조)을 미국에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두 미국이 강조하는 첨단기술 고급 일자리입니다.

9.둘째는 중국봉쇄입니다. 이 부분은 협상에서 치열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피하기위해 가능한 완곡한 표현을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대만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미국의 대중봉쇄로 알려졌던 쿼드(Quad)와 관련해서도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다자주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고 완곡하게 표현했습니다.

10.그렇지만 미국의 가치에 동조한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국제질서를 저해 불안정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지역을 유지키로 약속’하고 ‘국내외 인권 및 법치를 증진할 의지를 공유’했습니다. 이밖에도 아세안과 WHO 코백스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미국편에 서겠다는 내용이 빼곡합니다.

11.결과적으로 문재인은 미국의 입장을 거의 다 수용한 셈입니다. 대신 미국은 표현을 완곡하게 하고, 대북특사를 조기발표하고, 백신 55만명분 ‘깜짝선물’로 성의를 표시했습니다. 덕분에 정상회담은 모양이 좋아졌습니다.

아무튼 문재인이 국제정치의 현실을 깨달은듯해 반가운데..대통령이 외교를 알만하면 임기가 끝난다..는 외교가의 농담처럼 실천할 시간은 없어보입니다.
〈칼럼니스트〉
2021.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