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나만 잘하면 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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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31면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영웅전』 말고도 많은 글을 썼다. 그중 남아있는 78편을 모아놓은 게 『모랄리아』다. 철학·정치·윤리·교육·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상록으로, 거기에 ‘7현인의 만찬’이라는 글이 있다. 그리스의 일곱 현인으로 일컬어지던 인물들이 다양한 주제로 가상 대화를 나누는데, 민주정치란 어때야 하는지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민주정치는 어때야 하는가
고대 그리스 7현자의 조언
오늘 청년들 생각과 같아
진리는 늘 가까이에 있다

먼저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세운 개혁가 솔론이 말한다.

“범죄로 피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자 못지않게 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나라에서 민주정치가 가장 잘 운영되고 효과적으로 영속할 것이네.”

탁월한 연설가였던 프리에네의비아스가 두 번째로 말한다.

“모든 사람이 참주를 두려워하는 것만큼 법을 두려워하면 훌륭한 민주정치가 될 거야.”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라 칭한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이어 말했다.

“민주정치란 사람들이 지나치게 부유해지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난해지지도 않게 하는 것이지.”

다음은 스키타이의 아나카르시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중받지만, 덕과 악덕의 정도에 따라 더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이 구분되어야 하네.”

경구 짓기로 유명했던 린도스의클레오불로스가 뒤를 잇는다.

“공직자가 법보다 비난을 더 무서워하는 나라가 가장 정의롭다네.”

여섯 번째로 미텔레네의 피타코스가 말했다.

“그런 나라는 나쁜 사람이 공직에 오르도록 허용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공직을 거부하도록 허용하지도 않지.”

선데이 칼럼 5/22

선데이 칼럼 5/22

마지막으로 스파르타의 킬론 차례다.

“법률에 최선의 주의를 기울일 뿐, 법률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하는 게 최고의 체제라네.”

인용이 길어서 이번 칼럼을 거저먹는 듯하지만, 비난을 감수하고 장황하게 옮기는 것은 그만큼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는 까닭이다. 과연 현인은 현인이다. 어느 하나 버릴 말이 없다. 2600년도 더 지난 요즘 우리네 정치 상황에서도 귀에 쏙쏙 박힌다.

얼마 전 새 대표를 비롯한 집권당 관계자들이 성년의 날 간담회에 초청한 20대 청년들에게 혼쭐이 났다. 청년들의 지적이 워낙 일침견혈(一針見血)이어서 한마디 반박도 못 했다 한다. 특히 “민심을 받아들여야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럴 수밖에. 솔론이나 비아스, 킬론의 말이 바로 그 말이었으니까. 모든 사람이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법을 두려워하고 지키는 사회가 민주사회인 것이다. 시민들은 그럴 준비가 돼있고 사회는 이미 그런데, 민주정치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위정자들 탓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법을 어기고 정의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으면서 입만 열면 정의와 공정이 어쩌고저쩌고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민주화란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이 그런 민주적 가치들을 짓밟고 서 있었던 것이다. PC를 빼돌리면서 “증거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오만은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가족들이 합심해 온갖 불법과 탈법, 편법을 행한 법무장관을 마지못해 내치면서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하는 불손은 국민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린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청년들은 “결과적 공정보다는 절차적 공정을 원한다”고도 했다. 아나카르시스와 클레오불로스, 피타고스의 말이 바로 그 얘기였다. 공직자라면 또는 공직자가 되려면 법을 지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공직이란 게 승리자가 쟁취한 트로피나 특전이 아닌 까닭이다. 공직이란 명예는 보다 도덕적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고, 이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공직 주변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보물선에서 인양된 것 같은 그릇들을 구비하고 사는 인물이 (등 떼밀려서) 사퇴했다고 마음이 짠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리 종합선물세트 같이 살아온 인물을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에 임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라”던 당부를 충실히 지켰던 검찰총장을 못 잘라서 안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심성 공약보다는 “삶이 어려운 것 없게”나 잘하라는 주문 역시 탈레스가 말한 지나치게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삶과 다름아니다.

그리스 현인들이 말한 민주정치에 필요한 요소는 결국 세 가지다. 법과 도덕성, 민생 말이다. 오늘날 이 땅의 20대 현인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시공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넘어서며, 그다지 추측하기 어렵지도 않은 진리인 것이다. 그것을 권력자들만 모른다. 사실 이 정권뿐 아니라 이전 정권도 늘 그래왔다. 그들의 말로가 늘 험했던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이런 진리가 어렵다면 좀 더 쉽게 권력자들에게 말해줄 수 있겠다. 자신들의 안위 문제이니 귀담아들었으면 좋겠다. “나만 잘하면 돼!”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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