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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세 혼선은 ‘빙산의 일각’…불안 키우는 임기말 결정장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뜨거운 감자’인 부동산 세제와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가운데)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가운데)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대신 홍 부총리는 “최근 제기된 부동산 이슈, 즉 기존 부동산 정책의 일부 변화 가능성에 대한 갑론을박 및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것이 시급하다”며 “이와 관련 기존 부동산 정책의 큰 골격과 기조는 견지하되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민의 수렴, 당ㆍ정 협의 등을 거쳐 가능한 한 내달까지 모두 결론 내고 발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만 했다.

경제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홍 부총리지만 혼선의 책임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떠넘기는 발언만 했다. 종합부동산세ㆍ양도소득세 등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정부 측 의견은 뚜렷이 밝히지 않은 채로다. “기존 정책 골격은 견지하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결론 내야 한다”는 모호한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

종부세ㆍ양도세 등 부동산 세제를 둘러싼 혼선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날 오후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부동산 세금 정책에 대한 찬반 논의를 벌였다. 가닥이 잡힌 건 재산세 하나다. 재산세 감면 기준을 공시가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다. 4ㆍ7 보궐선거 이전부터 논의됐던 방안이고, 세제 틀 자체를 바꾸는 큰 변화는 아니다. 나머지 종부세ㆍ양도세 부분은 당 부동산특위에서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종부세 부과 기준 공시가 9억→12억원 상향, 양도세 중과 완화는 ‘없던 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4ㆍ7 보궐선거 패배에 놀란 여당이 부동산특위까지 구성하며 논의의 불씨를 먼저 당겨놓고도 내부 이견을 한 달 넘게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에서도 각기 다른 목소리가 쏟아져 나와 시장 혼란만 키웠다.

종부세만 해도 김진표 민주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부과 기준 12억원 상향을 직접 언급했지만, 청와대가 막아섰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중히 해야 한다” 밝히면서다. 취득세와 함께 대표적 부동산 거래세로 꼽히는 양도세도 마찬가지다. 김진표 위원장에 송영길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나서 “거래세 완화”를 얘기했지만, 당내 강경파 반대에 부딪혀 양도세 완화 논의는 별다른 진전 없이 폐기될 분위기다.

당ㆍ정에서 핑퐁게임만 계속하는 사이 부동산 시장 불안만 고조되고 있다. 이날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이달 셋째주(17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값은 전주 대비 0.1% 상승하며, 2ㆍ4 부동산 공급대책 발표 이전 상승률을 회복했다. 다음 달 1일 양도세 중과, 보유세 대상 확정 등을 앞두고 매물 잠김 현상만 심해지는 중이다.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게시된 시세판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게시된 시세판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사실 부동산 세제 혼선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출 규제, 암호화폐, 자영업 손실보상제 등 다른 굵직굵직한 정책이 비슷한 방식으로 표류 중이다. 무주택 실수요자에 한해 담보인정대출(LTV)을 90%까지 완화하겠다고 송영길 대표가 직접 말해놓고 “와전됐다”(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며 번복한 것도 한 사례다.

정책 레임덕(정권 말기 지도력 공백 상태)은 어느 정권이든 말기에 접어들면 반복됐던 일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전 정권보다 더 극심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평가다. 180석 거대 여당은 오히려 독이 됐다. 내년 대선을 타깃으로 한 여당 내 주도권 다툼, 여론 떠보기에 주요 정책이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당ㆍ정ㆍ청 모두 각각의 이유로 분명한 결정을 미루고 시간 끌기만 하는 양상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책 결정의 신속성이 곧 국가 경쟁력인데 현재 정부는 결정 장애에 빠져있다”며 “레임덕 탓만 할 수 없는 게 부동산 등 현 정부 초기부터 정책 방향을 크게 잘못 잡았던 탓에 이를 수습하지 못하고 더 망가지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권 교체 시기 정부 전문 관료가 중심을 잡고 이끌어가야 하는데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무게 중심이 여당에 쏠리면서 홍 부총리 등 경제부처장 ‘패싱’ 현상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대외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미국의 통화 긴축, 시중금리 상승, 암호화폐 가격 추락, 더디기만 한 백신 공급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폭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김영삼 정부 말), 2003년 카드 사태(김대중 정부 말),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노무현 정부 말) 등 한국 경제를 뒤흔든 위기가 각 정부 말기에 터진 건 우연의 일치라고만 할 수 없다. 외풍이 물론 컸지만 정권 교체에 따른 경제 정책 리더십 공백이 내부 위기를 키우는 주된 요인이 됐다. 지금의 경제 정책 리더십 실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이 진전되면서 금리ㆍ물가 등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정책이나 의사 결정이 원칙에 맞게 이뤄져야 하지만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게 되면 적절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짚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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