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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보는 자리서···바이든, 中과 싸운 한국전 영웅에 훈장 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하는 21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참전영웅에 명예훈장을 수여한다. 백악관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한국전쟁에서 용맹을 보여준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할 것”이라며 “이 자리엔 문 대통령도 참석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취임후 첫 명예훈장 수여식, 문 대통령도 참석 #첫 회담 앞두고 ‘기억하라 한ㆍ미동맹’ 메시지 #지난해 주미대사 "한국은 미, 중 간 선택 가능" #직후 국무부 "한국은 수십 년 전 이미 선택" #백악관, 이번에 피로 맺은 양국 관계 상기시켜

지난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랠프 퍼켓 주니어 퇴역 대령은 오는 21일(현지시간)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는다. [미 육군 트위터, 위키피디아 캡처]

지난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랠프 퍼켓 주니어 퇴역 대령은 오는 21일(현지시간)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는다. [미 육군 트위터, 위키피디아 캡처]

특히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받는 퍼켓 예비역 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맞섰던 참전용사였다.

명예훈장(Medal of Honor)은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이다. 21일 명예훈장 수여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첫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중요한 의미가 담긴 행사의 주인공으로 94세의 한국전쟁의 영웅을 선정하고 동시에 문 대통령도 함께 하도록 한 것은 함께 피를 흘렸던 한국전쟁으로부터 시작된 한ㆍ미동맹을 기억하며 더욱 발전시키자는 무언의 메시지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을 첫 대면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는 ‘기억하자 한ㆍ미동맹’으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명예훈장 수여식에 외국 정상이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예훈장 수여 때 외국 정상 참석은 처음

백악관은 퍼켓 예비역 대령과 관련 “명예훈장은 전장에서 개인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용기와 희생을 보여준 이에게만 수여되는 것”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그의 활약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퍼켓 전 대령은 1950년 8월 26일부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같은 해 11월 25~26일 205고지 점령 과정에서 전투를 치렀다. 백악관 보도자료엔 그가 맞섰던 ‘적’이 누구인지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그 적은 중공군이었다.

청천강 전투 당시 유엔군을 공격하는 중공군의 모습. [미 육군]

청천강 전투 당시 유엔군을 공격하는 중공군의 모습. [미 육군]

미군 전문지인 아미타임스에 따르면 그가 활약한 전투는 그해 11월 24일 시작된 제2차 청천강 전투로, 함께 북진했던 국군과 미군이 본격 참전한 중공군과 벌였던 치열한 전투다. 미 육군 특수부대인제8레인저 중대원 51명과 한국군 9명을 이끌던 퍼켓 전 대령은 전투 당시 그의 작전 구역에 2만5000명의 중공군이 있다고 보고받았다. 그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먼저 수백 명의 적군과 맞서 싸웠다. 수적 열세로 부하 병사들이 집중포화를 받자 적 화력 분산을 위해 개활지를 세 차례나 넘나들었다. 그 사이 그의 중대는 205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오자 중공군은 박격포를 쏘며 몰려 왔다. 이날 밤 중공군과의 4차례의 전투 중 그는 첫 공격을 받을 때 적 수류탄 파편에 맞아 다쳤지만 대피를 거부하고 전투를 지휘하다 다시 적의 박격포 2발의 파편에 맞았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그는 부하 병사들에게 후퇴를 명령하고 본인은 거점에 남았다. 결국 빌리 월스, 데이비드 폴록 등 부하 병사 2명이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 언덕을 올라와 중공군 3명을 사살하고 그를 구출해 빠져나왔다.

1950년 청천강 전투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 [미 육군]

1950년 청천강 전투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 [미 육군]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퇴각했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용기는 두고두고 미군에 회자됐다. 퍼켓 전 대령은 미 언론 인터뷰에서 “오전 2시쯤 중공군은 큰 소리를 내며 달려왔고, 우리는 늘 그렇듯 혼자였다. 포병들은 다른 부대를 지원하느라 우리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퍼켓 전 대령은 이후 베트남전에도 참전해 1967년 7월부터 약 1년간 101공수부대에서 활약한 뒤 1971년 대령으로 전역했다. 그는 전역 이후에도 참전용사 관련 활동 등을 지속해 1992년 육군 레인저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할 뻔했던 퍼켓 전 대령에 대한 훈장 수여식이 열리는 21일은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해 정상회담을 하는 날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은 짧게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 길게는 공산권과 맞서 싸우던 시기의 다자주의 회복을 천명하고 있다”며 “중국에 맞서 함께 피 흘려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

이번 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ㆍ미는 전통적인 양국 관계에 힘입어 안보 공조와 분야별 협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핵을 놓고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미국 정부와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내곤 했다. 지난해 6월 이수혁 주미한국대사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직후 국무부가 미국의소리(VOA)를 통해 이례적으로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고 공식 반응했던 게 대표적이다. 한ㆍ미 간 이같은 잡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명예훈장 수여식은 백악관 차원에서 한국의 선택이 누구였는지를 놓고 도장을 찍는 자리를 연상케 한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한국군과 함께 끝까지 막으려 했던 미군 참전용사인 퍼켓 전 대령을 치하하는 건 수십 년 전 ‘한국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명예훈장 수여식에 한ㆍ미 정상이 함께 하는 모습은 향후 바이든 대통령이 그리는 양국 관계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 지구촌 반도체 수급 재편, 중국의 일방주의 견제, 완전한 북한 비핵화 등에서 자신의 어젠다를 끌고 가려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동맹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미 행정부 인사들이 거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문구가 “동맹과 함께”이다. 기후변화 지원, 반도체 등 신기술에서의 미국 우위 생태계 협조, 남중국해ㆍ신장 인권 등 중국 압박 동참, 개도국 백신 경제적 지원 협조 등 북핵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바이든 정부는 동맹의 실질적 지원과 동참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은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선 6ㆍ25전쟁을 함께 치렀던 한국이 앞으로도 미국과 함께 하는지를 재확인하려는 자리이고,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명예훈장 수여는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초청해 회담을 갖는 것은 문 대통령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해외 정상으론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을 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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