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인은 도둑맞은줄도 몰랐다, 금붙이 절도범 '손놀림 신공'[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CCTV에 딱 걸린 금은방 절도범

지난달 26일 오후 1시쯤 대전역 앞의 한 금은방.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들어와 “목걸이와 반지를 사고 싶다”며 진열장에 놓인 금붙이를 구경했다. 금은방 주인은 마침 매장 안에 다른 손님도 있어 남성에게만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전동부경찰서, 절도 혐의 60대 남성 송치

이때 진열장을 둘러보던 남성이 왼쪽 팔을 길게 뻗어 진열장 구석에 있던 목걸이 등 금붙이를 한 움큼 움켜쥐었다. 이어 다른 물건을 힐끔거리던 남성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것처럼 휴대전화를 꺼내 든 뒤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의 왼손에는 조금 전 집어든 금붙이가 들려 있었다. 이날 남성이 범행을 저지르는 데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오후 대전시 동구 대전역 앞 금은방에셔 60대 남성(노란색 원)이 주인이 다른 손님과 흥정하는 사이 금품을 훔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달 26일 오후 대전시 동구 대전역 앞 금은방에셔 60대 남성(노란색 원)이 주인이 다른 손님과 흥정하는 사이 금품을 훔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금은방 주인은 그가 금품을 훔치는 줄도 몰랐다. 범행이 사각지대인 매장 구석에서 이뤄진 데다 워낙 손놀림이 빨랐기 때문이다.

범행에 성공한 남성은 또 다른 범행 대상을 찾기 위해 걸어서 지척인 대전시 중구 지하상가를 찾았다. 금은방이 밀집한 지하상가는 평소 유동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주인의 신경이 덜 미칠 수밖에 없다.

곧바로 지하상가 내 매장으로 들어간 남성은 주인에게 “금팔찌 등을 사려고 한다. 지금 현금(원화)은 없고 달러만 있는데 은행에 가서 환전한 뒤 물건을 사겠다”고 환심을 샀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이 모두 고가의 명품이라며 주인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경찰은 첫 범행이 이뤄진 대전역 앞 금은방 주인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해당 금은방은 물론이고 인근 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130여 대의 영상도 분석했다. 당시 CCTV 분석에는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20여 명이 동원됐다.

"금붙이 사려고 한다" 환심 산 뒤 범행

지난달 26일 오후 대전시 중구 지하상가의 한 금은방애서 60대 남성(오른쪽 노른색 원)이 주인이 보여주는 금팔찌(왼쪽 노란색 원)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달 26일 오후 대전시 중구 지하상가의 한 금은방애서 60대 남성(오른쪽 노른색 원)이 주인이 보여주는 금팔찌(왼쪽 노란색 원)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주인에게서 팔찌를 건네받은 남성은 한쪽 손목에 팔찌를 찬 채 “다른 물건을 보여달라”고 했다. 물건을 건넨 주인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른 손님과 대화하는 사이 남성은 자연스럽게 매장 밖으로 나갔다.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는 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신고 접수 하루 만에 범인을 특정한 경찰은 그의 연고지에 형사들을 급파했다. 내부에서는 휴대전화 위치(GPS)와 금융계좌 거래내역 확인 영장을 발부받아 동선을 추적했다. 용의자는 A씨(60대)로 절도와 사기 전과가 많은 남성이었다. 경찰이 잠복에 들어간 뒤 며칠간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외부로 돌았다. 범죄를 저지른 뒤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태였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연고지와 그가 자주 찾는 지역에서 잠복을 이어가던 경찰은 지난 1일 청주에서 A씨를 검거했다. 그가 금은방 2곳에서 훔친 금품은 500여만 원에 달했다.

추적과정서 추가 피해 금은방 확인

대전동부경찰서는 지난달 26일 대전시 동구와 중구지역 금은방에서 5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60대 남성을 구속 송치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동부경찰서는 지난달 26일 대전시 동구와 중구지역 금은방에서 5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60대 남성을 구속 송치했다. 신진호 기자

경찰은 A씨의 동선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하상가 금은방 한 곳도 피해를 본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형사가 해당 금은방을 찾아 A씨의 범행을 알려줄 때까지 주인은 금품이 없어진 줄도 알지 못했다.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당일 청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해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금은방 주변을 배회하며 내부 구조를 살피고 주인의 동선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훔친 금품은 서울의 한 금은방에서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에서 “생활비로 쓰려고 훔쳤다”고 진술했다.

대전동부경찰서 형사팀 김경찬 경위는 “손님을 가장해 금은방에 들어간 뒤 돈이 많은 것처럼 주인을 속여 금품을 훔쳤다”며 “금은방 업주를 대상으로 이번 사례를 널리 알려 추가 피해를 막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