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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의사 역할 '유령간호사'…서울대병원·의료계 왜 다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제 간호사의 날인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021 한국간호사의 현실, 환자 속이는 불법의료행위 이제는 멈춰야'를 주제로 연 현장 좌담회에서 간호사들이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현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간호사의 날인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021 한국간호사의 현실, 환자 속이는 불법의료행위 이제는 멈춰야'를 주제로 연 현장 좌담회에서 간호사들이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현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인력) 간호사의 양성화 논의가 또 달아오르고 있다. PA는 주로 대형병원에서 수련의를 대신해 수술 보조 등을 담당하는 전문 간호사를 말한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라 스스로를 ‘유령 간호사’로 부른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모습. 뉴스1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모습. 뉴스1

서울대병원, 임상전담간호사 추진 

지난해 8월 의료파업이 한창일 때 PA의 역할이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PA 양성화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파업이 끝나고 병원 운영이 정상화되면서 가라앉았다. 그러다 최근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국내 빅5 병원 중 한 곳인 서울대병원이 PA를 ‘임상전담간호사’로 키우려 하면서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PA를 임상전담간호사(CPN·Clinical Practice Nurse)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속도 간호본부에서 의사·교수가 속한 진료과로 바꿀 계획이다. 서울대병원은 현행 의료법 테두리 안에서 의사 보조·진료 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절차와 범위도 명확히 하기로 했다. 실제 양성화가 이뤄질 경우 처우도 확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내 PA는 160명가량이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PA(간호사)를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국가가 관리한다면 환자에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열린 '보건의료현장 불법의료 실태고발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가면을 착용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가 현장증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열린 '보건의료현장 불법의료 실태고발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가면을 착용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가 현장증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해묵은 딜레마, PA 

PA는 의료계의 오래된 고민거리다. 현실적으로 병원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현행법상 간호사에게 금지된 의료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PA는 병원의 묵인 아래 수술보조나 처방대행·진단서 작성·시술 등 업무를 맡아왔다. 주로 기피부서인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에서 의사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런데도 인건비는 전공의에 비해 낮다고 한다. PA가 늘어난 이유다.

하지만 PA는 불법이다 보니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정 지원 없이 ‘어깨너머’나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업무를 익히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영국 등에선 합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16곳 국립대병원에 소속된 PA 간호사만 972명에 달한다. 2015에는 592명이었다. 4년간 64%(380명) 증가했다. 민간병원까지 합하면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국제 간호사의 날을 하루 앞둔 11일 울산대병원 특수(음압) 중환자실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간호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뉴스1

국제 간호사의 날을 하루 앞둔 11일 울산대병원 특수(음압) 중환자실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간호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뉴스1

"PA 양성화 시도 즉각 철회를" 

하지만 병원·의료계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불법적인 PA의 의료행위는 의료 면허체계의 붕괴와 의료의 질 저하,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적 책임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높다”며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병의협은 국립대병원인 서울대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PA 합법화 시도를 즉각 철회해줄 것도 요구했다. 병의협은 서울대병원이 철회하지 않을 경우 법적 고발 등 조처를 할 계획이다.

PA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는 “서울대병원이 내부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보이나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다”며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빌미로 간호사, 의료기사들에게 공식적으로 불법행위를 강요하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전체 의료계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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