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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의기‘양양’···1인가구 몰리는 '서핑도시' 다른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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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싱글세대가 올해 처음 9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국내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음에도 ‘1인세대’는 2016년 744만명에서 지난해 906만명까지 불어났다. 정부는 향후로도 세대분화 속도가 더욱 빨라져 1년 내에 싱글세대가 1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포분열을 하듯 싱글세대가 증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젊은세대들이 역대급으로 독립선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독립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고민과 세대분화 양상 등을 짚어봤다. 특별취재팀

서핑성지로 불리는 강원 양양군의 한 해변에서 서퍼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서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 양양군]

서핑성지로 불리는 강원 양양군의 한 해변에서 서퍼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서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 양양군]

“미세먼지 없는 양양서 진정한 자유 찾았죠.”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에서 만난 ‘서울 토박이’ 박진영(31·여)씨의 말이다. 서울 강서구에 살던 박씨는 2018년 8월 현남면으로 주소를 옮기면서 ‘싱글세대’가 됐다. 박씨가 가족과 떨어져 양양에서 혼자 살게 된 건 크게 세가지. 서핑, 저녁이 있는 삶, 미세먼지다.

[싱글즈]⑨ #양양 나홀로 이주한 서울사람들

독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서핑이라고 한다. 박씨는 2017년 여름 친구와 양양으로 여행을 온 날 서핑의 매력에 푹 빠져 퇴사와 독립을 결심했다. 당시 파도를 기다리며 하늘과 바다, 먼 산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여기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박씨는 “서울은 건물에 사방이 막힌 데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아 늘 답답하고 심신이 지쳐있었다”며 “지금은 어딜 가든 뻥 뚫린 바다를 자주 볼 수 있어 여유롭고 자유롭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없고 서핑이 좋아 강원 양양군으로 이주해 싱글세대가 된 ‘서울 토박이’ 박진영(31·여)씨. 박진호 기자

미세먼지가 없고 서핑이 좋아 강원 양양군으로 이주해 싱글세대가 된 ‘서울 토박이’ 박진영(31·여)씨. 박진호 기자

서울에서 수영강사로 일할 땐 오후 1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데도 직장에서 집까지 40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양양에 와서는 서핑 관련 회사에 다니며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집에서 바다 인근에 있는 직장까지는 오토바이로 3분 거리. 퇴근 후엔 바다에서 마음껏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박씨는 “처음엔 부모님이 ‘서울에서만 살던 네가 어떻게 시골에서 살 수 있겠니’라고 걱정하며 독립을 반대했는데 양양에서 여유롭게 사는 걸 보시더니 지금은 안심하시는 것 같다”며 “양양으로 오면서 급여가 크게 줄었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나홀로 이주 늘면서 인구도 증가 

박씨는 “미세먼지에서 벗어난 것도 양양에서의 큰 수확”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 양양의 일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당 65㎍(보통), 초미세먼지는 12㎍(좋음)이었다. 박씨가 살던 서울 강서구의 이날 일평균 미세먼지 농도인 ㎥당 88㎍(나쁨), 초미세먼지 40㎍(나쁨)보다 월등히 좋았다.

서핑성지로 불리는 강원 양양군의 한 해변에서 서퍼들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서핑을 즐기고 있다. 박진호 기자

서핑성지로 불리는 강원 양양군의 한 해변에서 서퍼들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서핑을 즐기고 있다. 박진호 기자

박씨는 서울에 살 땐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늘 피부염에 시달렸다고 한다. 매주 1~2회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었다. 하지만 양양으로 이주한 뒤론 아직 한 번도 피부과를 간 적이 없다. 박씨는 “미세먼지 영향으로 피부가 늘 안 좋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공기가 깨끗한 곳에 있으니 피부도 자연스럽게 깨끗해졌다. 양양은 앞은 바다인 데다 뒤쪽엔 백두대간이 버티고 있는 지형적인 특성으로 비교적 미세먼지가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핑의 메카로 떠오른 양양엔 박씨처럼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나 홀로 이주를 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2016년 2만7218명이던 양양의 인구는 지난해 말 2만7946명으로 2.6%(728명) 늘었다. 인구 소멸 위기에 몰린 전국 지방 시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은퇴자 발길 잦아지는 양양 

바다와 산, 맑은 공기를 찾아 서울에서 강원 양양군으로 나 홀로 이주한 최현성(71)씨. 박진호 기자

바다와 산, 맑은 공기를 찾아 서울에서 강원 양양군으로 나 홀로 이주한 최현성(71)씨. 박진호 기자

외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늘면서 1인세대도 동반 증가했다. 2016년 말 6183세대였던 1인세대는 지난해 말에는 6994세대로 13.1%(811세대) 증가했다. 0~19세와 40대를 제외한 20~30대, 50대 이상은 1인세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중 60대 이상의 노년층의 1인세대 증가도 눈에 띈다. 통계로만 보면 2016년 말 60대 이상 1인세대 수는 2928세대인데 지난해 말에는 3669세대로 25.3%(741세대)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의 1인세대 증가에 대해 미세먼지 청정지역을 찾는 은퇴자들의 이주가 늘고 있는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미세먼지를 피해 이주한 사례는 서울에서 함께 살던 가족과 떨어져 양양으로 나 홀로 이주한 최현성(71)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30년 넘게 서울 구로구에서 생활하다 2015년 4월 양양군 손양면에 땅을 사 귀농했다.

최씨는 오랜 기간 미세먼지를 피해 귀농할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인천 강화도 등 서울 근교를 돌며 미세먼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땅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이 예정된 양양을 찾았고 깨끗한 바다와 맑은 공기에 반해 이주를 결정했다.

최씨는 현재 밤과 매실 농사를 지으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미세먼지 청정지역에서의 삶에 만족감을 느낄 때마다 서울에 사는 형과 여동생에게도 이주를 적극 권했다. 이에 지난해 3월 형(73)이 양양으로 이주했고, 3개월 뒤인 6월엔 여동생(66)이 양양으로 이주하면서 삼 남매가 모두 1인세대가 됐다.

최씨는 “바다와 산, 맑은 공기를 마시며 노후를 보내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며 “2017년에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2시간이면 서울까지 갈 수 있고, 바다까지는 3㎞, 읍내는 2㎞ 거리라 혼자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청정지역이자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강원도로 이주하는 이들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날로 환경문제나 공기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교통망 확충 등을 통해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꾸준히 좋아지고 있어서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은 강원도 산림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팬더믹 이후 이런 가치들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며 “향후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등 환경가치에 대한 선호와 즐길 거리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1·2인가구가 이주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현예·최은경·이은지·김준희·박진호·백경서·최연수 기자, 영상=조수진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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