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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또 반복된 청년 노동자 비극, 특단의 대책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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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앞 광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씨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17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앞 광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씨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평택항에서 일하다 컨테이너 사고로 숨진 대학생 이선호(23)씨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 차려진 분향소엔 시민들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지난 13일 빈소를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네 번째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부친과 일하다 컨테이너 깔려 숨져 #엉망인 안전관리 더 이상 방치 안 돼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화물 컨테이너 작업을 하다 무게 300㎏가량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 이씨는 아버지 이재훈(62)씨와 같은 일을 하다 변을 당해 시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대학 3학년인 이씨는 군대를 다녀온 뒤 지난 1월부터 아버지를 따라 컨테이너 관련 일을 해왔다. 아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아버지가 밝힌 사고 과정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산업 안전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대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 당일 새로운 작업을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위태로운 작업을 하다 돌발 상황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8년 당시 24세 청년 김용균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컨베이어벨트 작업을 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을 때 다시는 산업 현장의 사고로 젊은이를 희생시켜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시행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또 한 번의 참극을 막지 못했다.

사고가 난 뒤 여야 의원들이 현장을 찾고 해양수산부가 기관장 회의를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내년에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을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을 추진하는 등 제도 보완 움직임도 시작됐다. 하지만 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동법 전문가인 기영석(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사고가 난 뒤에 원인을 추적해 보면 여러 위험 요소가 겹친 경우가 많다”며 “특히 사업장 책임자는 안전관리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고 안전관리 조치를 이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며 비용 감당이 어려운 영세사업자를 고려해 공적 차원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번 비극을 통해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는 안전관리나 교육 측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기업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 소속 직원뿐 아니라 영세 하청업체 직원에게도 안전 확보에 빈틈이 없는지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어제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 현장에서 답을 찾아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듯 아무리 강한 법을 만들고 처벌 규정을 신설해도 현장 상황과 맞지 않으면 비극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 다들 편한 일을 추구하는 시대에 위험을 마다치 않고 생산과 노동 현장에 뛰어든 청년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기둥이다. 소중한 젊은이들이 어이없는 사고로 꿈을 잃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