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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시대착오적인 ‘역사 왜곡 방지법’ 철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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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주축이된 '처럼회' 회원들이 대화 중에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왼쪽이 이재정, 왼쪽 다섯째가 김용민, 맨 오른쪽이 김남국 의원인데 '강성 친문'으로 분류된다.[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주축이된 '처럼회' 회원들이 대화 중에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왼쪽이 이재정, 왼쪽 다섯째가 김용민, 맨 오른쪽이 김남국 의원인데 '강성 친문'으로 분류된다.[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이 최근 발의한 ‘역사 왜곡 방지법’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성이 크고, 불필요하게 국론 분열과 진영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 진영 갈등 자극 우려 #민주당, 정치 잣대로 역사 해석 안 돼

이번 법안의 대표 발의자는 4·7 보궐선거 이후 새로 구성된 민주당 지도부에 최고위원으로 입성한 김용민 의원이다. 그동안 숱한 논란을 일으킨 ‘친문 강경파’ 초선 정치인이다.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린 김남국·이재정 의원도 친문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3·1운동과 4·19 민주화운동은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학살·인권유린 및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금한다.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욱일기 등)나 조형물을 사용하는 행위 등에 대해 최대 10년의 징역형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에 따르면 왜곡 여부에 대한 판단은 ‘진실한 역사를 위한 심리위원회’가 맡도록 했다. 시정명령권까지 부여되는 이 위원회는 역사학자 등 관련 전문가로 구성하도록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최종적 역사 해석 권한을 이 위원회가 좌지우지하게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압도적 과반이 넘는 174석을 보유한 민주당의 영향 아래 놓일 것이 뻔해 보인다. 공산당이 역사 해석을 독점하는 중국을 따라 하자는 것인가.

김용민 의원은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거짓으로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빈번해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며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열린 공론의 장에서 다룰 문제를 굳이 입법부가 나서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과잉입법 시비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지난해 여당이 밀어붙인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은 5·18의 저항정신과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4·16 세월호 왜곡 금지법’도 발의했으나 지난해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론이 제기돼 폐기된 적도 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대하소설 작가 이병주 선생은 소설 『산하(山河)』에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설파했다. 생전에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권력자의 의도가 역사 서술에 반영될 수야 있겠지만, 기록된 역사만으론 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으니 문학의 역할이 크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만큼 논란 많은 근현대사일수록 역사 해석에 충분히 여지를 남겨둬야 맞다. 무엇보다 역사 연구와 서술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권력을 쥔 당대 정치인들이 역사를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고 한다면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시대착오적 법안을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