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타 애들 불러 한턱냈지`

중앙일보

입력

"일을 할 수 있으니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떳떳해."

10년 전 노원구청에서 정년 퇴직한 옥윤천(71)씨. 그는 한전산업개발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퇴직 후 양계업도 해보고 만화가게도 차려봤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2~3년 전부터 새로 일자리를 얻고 싶어 신문광고나 취업박람회를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아파트 경비도 나이가 많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광고를 보고 찾아가면 다단계 판매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올 2월 한전산업개발에서 65세 이상 되는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했다. 20명을 모집하는데 11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경쟁을 뚫고 얻은 일이 지금 하고 있는 전기요금 고지서 배달이다. 그가 맡은 지역은 도봉구 방학동 5000세대다.

처음엔 쉬워보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어려움이 많다. 하루에 200~300건 정도를 배달하는데 사무실에서 고지서를 정리하고(2~3시간), 배달까지 마치면 4~6시간이 걸린다. "처음 갈 때는 정말 아득했어. 두 번째 가보니까 감을 잡게 되더라고."

옥씨는 이렇게 힘들게 일한 대가로 10일 첫 월급을 받았다. 80만원이었다. "액수보다는 내가 일해 다시 월급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어." 옥씨는 10년 만에 받은 월급으로 자녀(1남 3녀)와 손자.손녀를 불러 근사한 저녁을 샀다고 했다. "돈을 버니까 자식들이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그는 지금 직장에 만족하지만 나이 든 사람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는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노인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아. 정부가 지원해서 만드는 월 20만~30만원짜리 일자리는 소일거리 정도야. 70만~8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해. "

◆ 특별취재팀=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변선구 사진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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