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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자 『사이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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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사이에 대하여

사이에 대하여

남들은 진즉 아는 답이겠지만 지진아처럼 뒤늦게 터득한 답. 그 삶의 비의를 꺼내놓을 차례다. 아무리 내 안을 들여다보아도, 경전을 읽고 면벽을 해도 존재의 의미는 찾아지지 않는다. 왜 사냐고? 누군가에게 필요해서, 써먹히기 위해 산다. 세 살 손자에게, 늙은 어머니에게…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여서,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다.

최민자 『사이에 대하여』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내 안에는 내가 없다. 존재의 의미도 정체성도 없다. 내 바깥에, 너와 나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존재의 세 기본재 뒤에 하나같이 간(間)이 따라붙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그리고 인간(人間).”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원숙한 글쓰기, 오랜 구력이 느껴지는 수필집이다. 존재의 비밀이 ‘사이’에 있으니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 “일상에 마모되고 관계에 지쳐갈 때마다 본연의 나로 사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울까, 나 역시 자주 혼란스러워지곤 했다. 엄마 아내 딸 할머니 친구 동료 동인 선후배 같은, 얽히고설킨 연과 업을 벗어두고 멀찌감치 달아나 숨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일상의 온갖 구체적 세목들, 노릇과 역할들을 다 제하고 나면 진짜 나라는 게 남기는 할까. 나란 어쩌면 자지레한 일상의 자장들이 파생해내는 교집합 속 한 점 좌표 같은 것이 아닐까.”

작가는 “바깥으로 날아오르는 가장 좋은 방편은 안으로 숨어드는 일”이라며 “안이 바깥을 낳는 기묘한 분만, 그것이 곧 글쓰기”라고 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