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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법 초월·우회, 민주주의 원리와 충돌 많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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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04면

진보 학계 원로 최장집 교수 진단

최장집 교수가 지난 7일 제주도청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제주도청]

최장집 교수가 지난 7일 제주도청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제주도청]

문재인 정부는 2016년의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규정한다. 문 대통령이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 나의 출발점”(2017년 6월)이라고 한 일도 있다.

민주주의 위기 특강, 원희룡 지사와 대담 #‘촛불혁명’ 규정, 87년 민주화 협약 깨 #도덕적 정당성 자임, 상대 척결은 위험 #스포츠 중계하듯 여론 중심 정치 #자유주의 대의제적 민주주의 일탈 #4년 중임제, 단임제보다 더 나빠 #개헌 어렵다면 의회서 총리 선출 #경제민주화, 헌법 전문에 규정 안돼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촛불혁명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내로남불이란 표현도 있지만 스스로 도덕적이고 정당하다고 자임하고 믿게 되는 동안 상대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척결의 대상이 되는 건 민주주의 하에선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농민·노동자·청년 등 ‘폭넓은 의미에서 사회로부터 요구’였던 촛불시위를 문재인 정부가 ‘혁명’으로 정의한 게 결과적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는데, 특히 보수적 정치 엘리트도 동의한 일종의 암묵적 협약이었고 평화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기반이었던 1987년 체제를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봐서다. 그는 "정치적으로 지난날의 보수세력을 부정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를 만들어 왔던 과거를 대체로 부정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며 "보수·진보 간 갈등의 강도를 높이고, 양극화하면서 갈등을 사회전체로 확산·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7일 제주에서 4시간 가까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했다. 100분간은 제주연구원 제24주년 특강이었고 130분간은 원희룡 제주지사와의 대담이었다. "한국 민주주의 앞날은 비관적이란 생각이 든다”라고까지 한 그의 진단과 우려, 조언을 정리했다.

보수·진보 갈등 높이고 양극화 확산

87 체제에 보수도 기여했다고 평했다.
"진보 세력이 극대화된 최신 버전이 문재인 정부라고 보는데, 역사와 민주화를 절반밖에,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87년 민주화는 구체제의 군부 권위주의 세력들이 민주주의에 동의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경험했던 방식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버마(미얀마) 사태를 보라. 말하자면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은 결과, 그래도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민주화·보수 세력 등 여러 정파에서 나온 8인의 대표들의 합의를 통해 민주헌법 (87년 10월)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운동이 주도했지만, 내용적으로 구체제의 집권세력과 민주파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통한 ‘협약에 의한 민주화’라고 말할 수 있다.”
촛불시위 이후 민주주의관도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적폐·역사청산을 개혁정책을 위한 슬로건으로 밀고 나가는 정서적 급진주의가 정치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기득세력을 척결코자 하고 제도권 정치에 대한 혐오가 확산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조성됐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과 아를 구분하며 여론을 창출하는 일이 실제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새 정부의 엘리트들은 은연중에 자유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민중주의적(populist)이고 대중참여적인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고 그간 노력해 왔던 민주주의는 제도의 틀 안에서 선출된 대표를 통해서 이뤄질 때 비로소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이제는 광장으로 간다. 거리에서 소리치고 스포츠 중계하듯이 몇 프로 몇 프로 하며 여론 중심의 정치를 한다. 이건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정치적 민주주의에서의 일탈 내지 왜곡이라고 본다.”

최 교수는 이날 문 대통령이 2017년 6월 민주 항쟁 기념사를 통해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연설한 걸 인용하며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운동하는 방식으로 온 사회를 정치화하고 시민운동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시민을 보통의 시민과 ‘깨어있는 시민’ ‘촛불시민’으로 구분하면서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부여하는 건 위험하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흔히들 경제민주주의, 경제민주화란 말을 쓰지 않나.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로 한정되는 게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관이랄까,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관점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차별이 많고 소외세력이 많은데 이걸 해결 못 하면 무슨 민주주의냐, 말하자면 경제적 민주주의를 배제한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 그것을 무슨 민주주의냐라고 반론을 제기하고는 한다. 우리가 이렇게 ‘최대정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해한다면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발전하기보다 실패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한국 헌법에도 경제조항이 있다. 그런 표현은 쓸 순 있다. 그러나 경제적 민주주의로 확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어도, 헌법 전문에 들어가서 규정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검찰 제도 자체 악마화 문제 많아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걸 강하게 우려한다.
"우리의 자유주의적 헌법이 시행 가능하기 위해선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어떻게 실현돼 대통령 권력을 견제해 법의 지배하에 놓이게 할 수 있느냐 문제가 핵심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법을 초월하거나 우회하기도 한다. 제도로서의 검찰 자체를 악마화하듯이 개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은 진정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이든, 국가의 어떤 기관이든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원리가 핵심이다. 스스로 법을 만들고 자신을 위해 법을 지키라는 건 민주주의라고, 법의 지배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개헌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5년 단임제는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가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통령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5년 이상 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나면서 부정적 요소는 분명해졌다. 현 제도하에서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일각에선 4년 중임제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현재의 단임제보다 더 나쁘다고 본다. 이상적인 대안은 의회중심제이나 그로의 개헌이 어렵다면 우리 헌법 86조(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를 더 강화해 총리를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선출하도록 하면 될 수 있다고 본다.”

원희룡 “청와대가 전리품 배분 카운터 돼, 당·정은 장식물 전락”

원희룡

원희룡

원희룡(사진) 제주지사는 야권의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정치인이다. 대학 시절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검사 생활을 하다 2000년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7일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1990년에 운동권 조직을 걸어 나가 방황하며 내 이념의 집, 집단주의란 집을 허물어야겠다, 다시는 특정 이념·집단을 절대화하는 건 하지 않아야겠다고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86에겐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보는가’란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소위 전대협이란 자신들의 끈끈한 투쟁조직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90년대 전후) 동구가 무너지고 북한의 주체사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면서도 그걸 마주하고 부정하며, 그 부정을 자기 입으로 표현해 보고 내부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금까지 어물쩍 왔다. 이념이나 투쟁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어떻게 주식투자 이런 게 가능하겠나. 지금은 모호하게 섞여 있다고 본다.”

그는 통합과 협력의 정치를 목표한다. “내가 권력자란 전제가 아니라, 내가 권력을 쥘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는 그 상태를 놓고 최적화한 거로 하는 메커니즘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대통령 권력을 덜어 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청와대 참모들의 권력이 비대해져 행정부 조직이 그냥 관료주의와 청와대 출장소 같은 형태가 된다”라거나 “공천이나 공직 임명권, 공기업에 대한 각종 이권과 지위 등에 대한 배분권을 청와대가 독점하고 있다 보니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게 된다. 청와대가 거대한 전리품 배분 카운터 같은 게 되면서 행정부와 집권여당을 완전히 장식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안으로 대통령을 직선하되, 법률거부권 등 견제 기능을 갖는 의전적·상징적 역할을 하게 하고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책임제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대선 전 개헌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국민의힘을 향해선 “말로만 민주주의자란 단어를 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적용되고 부닥치는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자란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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