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오디세이] ‘의수 화가’ 석창우
석창우(66) 화백은 전기기사로 일하던 29세 때 2만 볼트가 넘는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수묵 크로키’라는 영역을 개척한 미술계 레전드다.
두 팔 잃고 ‘수묵 크로키’ 개척 #미셸 콴 연기 보며 스포츠에 빠져 #김연아 공중 점프 보고 붓이 저절로 #이승엽·선동열 온몸 사용해 잘 해 #5시간씩 성경 필사 ‘석창우체’ 특허 #소치·평창 패럴림픽 감동 퍼포먼스 #42.195m 종이에 마라톤 담고 싶어
손끝과 팔을 이용해 섬세한 터치를 할 수 없기에 그는 어떤 장면이든 온 몸을 써서 표현해 내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한 힘과 기운이 넘친다. 그는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과 2018 평창 패럴림픽에서 힘찬 크로키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계인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석 화백은 5월 14일부터 한 달간 경기도 안산시 꿈의교회(담임목사 김학중) ‘더 갤러리’에서 45번째 개인전인 ‘석창우 화백-채움과 비움’전을 열고 있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는 MBC에서 다큐멘터리 ‘석창우의 순례-비아 프란치제나를 가다’가 방영됐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한남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석 화백을 만났다.
손 가진 30년보다 그 이후가 훨씬 행복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 “오전에 성경 필사 두 시간 반 하고, 사이사이 그림 작업을 합니다. 점심 먹고 낮잠 좀 잔 뒤에 다시 성경 필사와 작업을 병행하지요. 성경 쓰는 데 다섯 시간 정도 할애하고, 짬짬이 이메일·카카오톡·페이스북 확인하고 답장도 보내지요. 무협 소설을 좋아해 인터넷으로 늘 봅니다. 인물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공부도 되거든요.”
- 수묵화에서 색채로 넘어간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 “초기에는 색채를 썼는데 혼자서 물감을 일일이 준비해야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차라리 수묵화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빨간 먹물을 섞어 썼지요. 유럽 40일 여행 중 꽃과 자연 속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나면서 색을 써봐야겠다는 소망이 되살아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색을 많이 쓰게 됐죠.”
- 성경 필사는 언제 시작했나요?
- “2015년 1월 30일입니다. 성경 필사는 보이지 않는 세력의 방해를 많이 받습니다. 자꾸 글자를 틀려서 두루마리 몇 개를 버렸는지 모릅니다. ‘안 되겠다. 틀리는 건 사탄이다’ 생각하고 틀린 글자에 십자가로 엑스(X)를 그린 뒤 계속 진도를 나갔어요. 3년 6개월 만에 기독교 신구약을 다 썼는데 세로 46㎝×가로 25m 두루마리 115개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가톨릭 성경을 쓰고 있죠.”
- 성경 필사를 한 계기가 있겠죠.
- “양팔이 없어서 오래 못 살 줄 알았는데 2015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손 있는 30년, 손 없는 30년을 살았는데, 손이 있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행복했어요. 왜 그런지 따져봤더니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내가 들어가 있더라고요. 없는 손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생각해 보니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성경 필사 밖에 없더라고요.”
석 화백은 왼쪽 넷째와 새끼발가락도 없다. 감전 사고 때 전기가 그쪽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석 화백은 큰 퍼포먼스를 하고 난 뒤엔 왼발에 먹물을 잔뜩 묻혀 화선지에 꾹 누른다. “안중근 의사는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낙관이 유명하지만 나는 발가락 두 개가 없어요. 하하.”
- 석창우체를 특허 등록했죠.
- “성경 필사를 하다 보니 초기에는 글자도 크고 모양이 별로였는데 점점 모양이 변하더라고요. 주위에서 폰트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어요. 책의 활자로 쓸 수도 있고 책 표지에 사용할 수도 있겠죠. 석창우체는 성경 필사를 하니 하나님이 이쁘게 보셔서 준 선물입니다. ”
- 유럽여행 중 신부님과 재밌는 얘기를 나누셨던데요.
- “프랑스 몽블랑 꼭대기에서 신부님이 두 손을 호호 불면서 ‘손이 너무 시리네요. 빨리 들어갑시다’ 하기에 ‘나는 손이 없어서 손 시린 게 어떤 건지 몰라요’ 했지요. 손이 없어서 불편한 게 정말 많은데 그거 생각하면 못 살아요. 오묘한 게, 팔이 없으니까 선을 표현할 때 온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선이 안 나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손목·팔꿈치 관절을 이용해 기교를 부리는데 저는 그렇게 못 하니까 일반인이 흉내 내기 힘든 선이 나오죠. 치명적인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되는 겁니다.”
- 그런 힘 있는 선이 있어서 스포츠 경기를 많이 그리시는 것 같네요.
-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피겨 여왕 미셸 콴의 연기 장면을 그리면서 스포츠에 빠져들게 됐죠. 한국에도 이런 선수가 나오면 좋겠다고 기다렸는데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먼저 나왔고, 드디어 김연아가 나왔죠.”
- 김연아의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때 트리플 러츠 점프 장면을 그렸던데요.
- “그때가 김연아의 전성기였죠. 점프 하는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고 캡쳐했어요. 공중에 붕 떠서 돌 때 보면 얼굴을 찡그립니다. 엄청난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화가는 좋은 모델이나 소재를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 김연아 연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고 저절로 붓이 가더라고요. 손흥민이 푸스카스상을 받았던 70m 드리블 골 장면도 꼭 한번 그려보고 싶네요.”
- 최고 선수들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 “허리를 중심으로 온몸을 쓰는 게 보입니다. 이승엽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툭 건드리는 것 같은데도 홈런을 뽑아냅니다. 온몸을 효율적으로 잘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선동열도 어깨만이 아니라 온몸을 골고루 써서 던지니까 큰 부상 없이 장수했잖아요.”
붓 고정하는 데만 1년 넘게 피나는 노력
- 그림에 입문하는 과정이 힘드셨죠.
- “처음에 그림 배우려고 화실 찾아갔더니 다들 ‘손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난감해 하더라고요. 사군자는 가능하지 않겠냐 했더니 그럼 서예를 먼저 하래요. 처음엔 의수에 붓을 고정시키지 못해 고생했죠. 붓 흔들리지 않게 잡는 데만 1년 이상 걸렸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작업했더니 코피가 나고 허리도 아픈데 계속 하다보니 괜찮아지더라고요.”
-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뭡니까?
- “코로나19가 끝나면 전 세계를 다니며 각국의 유명한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해 보고 싶어요. 마라톤도 좋죠. 42.195㎞를 달리는 거니까 42.195m짜리 종이를 스타디움에 깔고 마라토너의 출발부터 골인까지를 담고 싶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 보고 싶기도 합니다. ”
“별 거 아니네” 감전 사고 때 부인이 용기 줘
석창우 화백의 사라진 두 팔과 손이 돼준 이가 ‘사모님’ 곽혜숙 씨다. 밥과 반찬을 떠먹여 주는 건 기본이고, 콧물이 나오면 휴지를 대 코를 풀게 해 준다. 화장실 용무를 챙겨주는 것도 사모님 역할이다. 거의 24시간을 두 사람은 붙어 있다. “사모님이 없다면?” 하고 묻자 “고행의 시작이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곽혜숙 씨는 스스로를 ‘위기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슨 일이 딱 닥쳤을 때 그걸 통해 점프하려고 하지 한 번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석 화백도 맞장구를 쳤다. “사고 당시 아내가 울고불고 하는 게 아니라 ‘별 거 아니네. 내가 다른 거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낫기나 하세요’ 그래요. 그걸 보면서 많이 다친 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게 빨리 사회에 복귀하게 된 큰 힘이 됐어요.”
곽 여사는 두 자녀도 훌륭하게 키워냈다. 딸은 간호사로, 아들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석 화백은 회갑을 맞으면서 부인 호칭을 ‘아줌마’에서 ‘사모님’으로 바꿨다. “사모님한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되도록 심부름 덜 시키는 것? 안 시킬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줄이자고 마음먹었어요. 방 닦는 거, 신발 정리는 제가 하고 큰 이불빨래도 제가 발로 합니다.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하하.”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