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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무대 잃은 비보이…이유 있는 '캥거루 1인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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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싱글세대가 올해 처음 9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국내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음에도 ‘1인세대’는 2016년 744만명에서 지난해 906만명까지 불어났다. 정부는 향후로도 세대분화 속도가 더욱 빨라져 1년 내에 싱글세대가 1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포분열을 하듯 싱글세대가 증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젊은세대들이 역대급으로 독립선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독립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고민과 세대분화 양상 등을 짚어봤다. 특별취재팀 

[싱글즈]⑧ #고양이와 사는 27살 비보이 장영준씨

아직 '캥거루족'이지만 괜찮아

전북 전주시 인후동의 한 건물. 4층짜리 상가 꼭대기 층(125㎡)엔 장영준(27)씨가 고양이와 함께 산다. 방 3개와 넓은 거실을 갖춘 이른바 '주인 집'이다. 장씨는 이곳의 세대주, 하지만 건물주는 장씨의 부친이다.

장씨는 현재 비보잉그룹 '맥스 오브 소울'이라는 팀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동네책방 '물결서사'의 운영진도 맡고 있다. '물결서사'는 전주에 뿌리를 둔 젊은 창작자들이 성매매 집결지인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에 2019년 1월 문을 연 예술가 서점이다.

장씨는 요즘 음식점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설 무대가 거의 없어서다. 한 달 수입은 20만원이 안 된다. 군 제대 후 독립을 꿈꿨지만, 아직 현실은 부친 소유 집에 살며 생활비를 얻어 쓰는 '캥거루족' 신세다. 캥거루족은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말한다.

비보이 장영준씨는 집을 연습장 삼아 살고 있다. 김준희 기자

비보이 장영준씨는 집을 연습장 삼아 살고 있다. 김준희 기자

장씨는 군 전역 후인 스물네 살부터 홀로 살았다. 부모님께 “떨어져 살고 싶다”고 주장해, 청소와 건물 관리를 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허락받았다. “부모님에게 벗어나고 싶어 나왔는데, 따지고 보면 독립한 게 아니다. 따로 살 뿐 부모님 품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유로워졌지만 밥과 빨래 등 일상을 책임져야 했다.

비보잉 공연을 하며 경제 자립에 도전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다. 공연 1회에 평균 50만원을 받는다. 멤버 1명당 10만원 정도 버는 셈인데 코로나19 이후론 공연이 거의 없다. 틈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식점 배달 등을 해 한 달 평균 10만~20만원을 벌고 있다. 팍팍한 재정 상황이지만 그는 “돈을 조금 벌면 내가 조금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돌 동경해 춤 시작…"한복 입고 비보잉"

비보이 장영준씨가 거실에서 비보잉을 보여주고 있다. 김준희 기자

비보이 장영준씨가 거실에서 비보잉을 보여주고 있다. 김준희 기자

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나니 즐겁기도 하고 더 잘하고 싶었다. 춤을 계속 추다 보니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났고, 스무 살 때인 2013년부터 '맥스 오브 소울' 멤버로 활동했다. 애초 비보이를 직업으로 삼은 건 아니었다. 그는 “열심히 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며 “2018년 여름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비보잉을 했는데 평이 좋아 2019년에도 했다”고 말했다.

비보이 장영준씨의 반려묘 빵돌이. 2년 전 이삿짐센터 트럭 밑에서 발견된 길냥이로, 그와 함께 살고 있다.김준희 기자

비보이 장영준씨의 반려묘 빵돌이. 2년 전 이삿짐센터 트럭 밑에서 발견된 길냥이로, 그와 함께 살고 있다.김준희 기자

장씨는 최근 교육대학원에 들어갔다. 한 중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로도 활동한다. 일주일에 한 번, 학생 15명을 대상으로 2시간씩 비보잉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는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 결혼을 해 아이도 낳고 책임을 지는데, 수입이 일정치 않고 집값도 비싸 두려움이 크다”며 “굳이 결혼해 그런 것들에 얽매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 기준대로라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라며 “당장 돈을 많이 받고 적게 받는 것을 떠나 나중에 더 큰 무대에 정당한 페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장씨와 같은 싱글즈의 등장으로 전북 인구는 줄지만 전주의 인구와 1인 세대는 증가 추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6년 186만4791명이던 전북 인구는 지난해 180만4104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3월 말엔 179만7450명으로 줄어 마지노선이라 불리던 180만명 선이 붕괴됐다.

반면 전주 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65만7432명으로 2016년(65만1744명)보다 늘었다. 1인 세대 증가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전주의 1인 세대는 10만5710명이다. 소도시(인구 10만명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1인 세대 규모도 2016년 8만3735명, 2017년 8만6529명, 2018년 9만998명, 2019년 9만6754명 등 매년 늘고 있다. 이 중에서도 MZ세대가 포진한 20대 비중이 지난해 기준 16.1%(1만7063명)로 가장 높다.

전북 인구 180만 붕괴…전주는 계속 늘어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북혁신도시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북혁신도시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전북도에 따르면 전주 인구는 지난해 기준 전북 밖으로 2256명 유출된 반면 도내 나머지 시·군에서 5402명이 유입됐다. 신현영 전북도 대도약기획단장은 "전주 인구는 13개 시·군으로부터 유입되는 인구 비중이 크고, 유소년(0~19세)과 청년(20~39세) 층 인구 유입이 상당히 많다"며 "이는 광역시 없는 전북에서 정주 여건이 좋은 전주로 인구가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도내 13개 시·군서 유입…유소년·청년 많아"

전주 한옥마을. 백종현 기자

전주 한옥마을. 백종현 기자

신 단장은 "타 시·도 유출 사유에서 직업과 교육 요인이 크고 시·도 간 전체 유출자 수(2256명)보다 시·도 간 1인 순이동자 수(3038명)가 더 많은 것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청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타 시·도 유입 사유 중 주택과 가족 요인이 많은 것은 혁신도시나 일부 기업 근로자에 의한 효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김현예·최은경·이은지·김준희·박진호·백경서·최연수 기자, 영상=조수진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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