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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마디에 천당·지옥…암호화폐 ‘머스크 리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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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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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시장이 ‘머스크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비트코인과 도지코인 등 암호화폐를 옹호하며 ‘코인 광풍’을 일으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변심에 시장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아군인지, 적군이지 헷갈릴 정도다.

“테슬라 팔 때 비트코인 안 받겠다” #비트코인 한때 -15% 도지코인 -22% #옹호 발언 땐 폭등…네티즌 “악당”

13일 암호화폐 시장은 급락으로 문을 열었다. 폭탄을 투척한 건 머스크였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테슬라 차의 비트코인 구매 결제 허용을 중단하겠다”고 기습 선언했다. 비트코인 채굴 등에 대규모 전기가 소비돼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암호화폐는 여러 의미에서 좋은 생각이고, 우리는 암호화폐가 전도유망하다고 믿지만 환경을 크게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월 15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투자를 발표하고,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차량 구매 허용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던 머스크의 ‘변심’은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머스크의 발언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지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은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의 암호화폐 정보업체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13일 오전 비트코인은 5만 달러가 무너지며 15% 이상 급락했다. 이더리움(-10.8%)과 도지코인(-22.47%)도 일제히 주저앉았다.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이날 낮부터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지만 출렁임은 종일 계속됐다. 암호화폐 전문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널을 뛰었다. 6341만원(오전 1시)→5321만원(오전 9시)→5700만원(오후 5시)을 오가며 하루 사이 16% 떨어졌다가 9% 오르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어갔다.

머스크 말 한마디에 출렁이는 비트코인 시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머스크 말 한마디에 출렁이는 비트코인 시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의식한 듯 머스크는 “우리는 더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통한 채굴로 전환되는 대로 비트코인을 거래에 사용하겠다”며 “테슬라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비트코인(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1%만 쓰는 다른 암호화폐를 찾고 있다”고도 밝혔다.

머스크의 폭탄 발언은 명분 만들기란 시각도 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환경 파괴는 명분에 불과할 뿐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테슬라가 감수할 수 있는 가격 한계선을 넘었기 때문에 (차량 결제) 방침을 철회한 것으로 본다”며 “저가 매수하려는 투자자가 몰려 이미 반등세를 탔기 때문에 대대적인 조정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도 차츰 머스크 리스크에 내성이 생기는 눈치다. ‘도지 파더’를 자처한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우리 모두의 암호화폐”라고 치켜세우며 최근 5개월간 가격이 2만% 넘게 올랐다. 지난 8일 미국 예능 프로그램 SNL에 출연하며 도지코인의 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방송 직후 가격은 곤두박질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겼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돌연 입장을 번복하자 트위터에는 머스크가 “시장 조작을 의도적으로 일삼는 거짓말쟁이이자 악당”이라는 비판의 글이 올라왔고, 머스크에 대한 욕설을 담은 해시태그까지 등장했다. 미 CNN방송은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수개월 동안 과대 선전하더니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머스크 리스크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지만 암호화폐의 변동성을 키울 소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산시장이 떨고 있는 인플레이션 공포도 암호화폐 시장에 불안 요인이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2%(전년 동월 대비) 상승해 12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하며 금리 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의 하락과 함께 암호화폐 시장으로도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규제도 암호화폐 시장에는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빗썸과 업비트·코인원·코빗 등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10곳을 상대로 이용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불공정 약관이 있는지 현장 조사에 나섰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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