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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스와프’ 무산, 실패한 ‘백신 외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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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24면

콩글리시 인문학

정부가 ‘양치기 소년’처럼 돼 가고 있다. 곧 들어 온다, 걱정하지 마시라, 11월이면 집단면역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사이 다른 나라들은 40%, 60%까지 접종해 마스크를 벗고 있는데 우리는 인구 대비 1차 접종이 겨우 3.9% 수준이라니(4월 23일 중대본 발표)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할까? ‘백신 바닥, 민심 바닥’인데 차질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K-방역 환상에 젖어 세계만방에 홍보하랴 허세를 부리더니 우리가 맞을 백신은 어디 있는지 여태 오리무중이다.

정의용 장관, 일방적 발표로 망신 #접종률 낮은데 공급난 해결 못해

지난 4월 청와대 개편과 각료 교체 중 뜬금없이 비서실에 수석급 방역기획관을 신설했다. 이 자리를 꿰찬 기모란 교수는 백신은 급할 게 없다고 주장하던 분이어서 야당의 비판뿐 아니라 국민 여론이 좋을 리가 없었다. 청와대 해명이 걸작이다. 당시 부작용 등을 고려해서 백신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었고 게다가 기 교수는 백신 담당이 아니고 방역 담당이라고 강변한다. 백신과 방역은 손등과 손바닥 관계임이 분명한데 청와대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몇이나 있겠는가?

왜란(倭亂)을 맞은 선조는 이순신을 기용해서 국난을 극복했는데, 역란(疫亂)을 맞은 문 대통령은 반vaccine주의자를 기용하다니. 뒤늦게 허둥대는 정부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백신 스와프(vaccine swap)를 미국과 진지하게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여유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중에 스와프를 꺼냈다. 그는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감성에 호소했다. 그런데 정 장관의 발언이 나가자마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답변은 “한국에 줄 만큼 백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망신이 있나? 사전에 외교 채널을 통해서 충분히 cooking이 되면 발표해야 할 사항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서 외교적 망신을 자초했다. 한승주 전 장관이 최근에 낸 저서 『한국에 외교가 있는가』는 우리 외교의 난맥상을 비판한다. ‘백신 거지 국가’라는 비난에 다급해진 문 대통령은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 도입의 검토를 지시했지만 얼마나 많은 국민이 러시아나 중국 백신을 선뜻 맞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외교 정책에는 3대 key word가 있다. 첫째가 카우보이 외교(cowboy diplomacy)다. 내 편 아니면 나의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태도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주범 오사마 빈라덴이 은신하고 있는 파키스탄에 대해 죽고 싶지 않으면 그의 체포에 협조하라고 압박했다. 둘째는 몽둥이 외교(big stick diplomacy)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즐겨 쓴 용어로 말은 부드럽지만 항상 큰 몽둥이를 들고 있다. 2차 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던 나라가 미국이다. 셋째는 달러 외교(dollar diplomacy)다. 말 그대로 경제 지원, 차관, 투자 등을 외교의 지렛대로 이용해 왔다. 외부로부터 미사일 공격 등 한반도 방어에 필요한 Thaad(사드) 운용도 보장하지 못하고, 중국의 경제 영토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넣어 달라고 매달리는 우리 정부 모습을 미국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국은 인접국,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동맹국 순으로 백신을 배정하고 있으니 한국은 기약이 없다. 마침내 백신은 무기가 되어 백신 외교(vaccine diplomacy)시대를 맞고 있다.

줄타기 외교는 위험하다. 추락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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