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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빛이 나는 종 모양 등, 신데렐라 치마 같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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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22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마르셀 반더스의 ‘벨라’

투명 폴리카보네이트에 비친 영롱한 불빛.

투명 폴리카보네이트에 비친 영롱한 불빛.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역병 대란의 여파는 길고도 길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다. 평소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한 집안의 집기와 분위기가 거슬렸다. 의자는 오래 앉아있기 힘들고, 테이블 위를 비추는 불빛은 침침하기만 하다. 바깥으로만 싸돌아다니던 남자가 새삼 집안 여자의 불편을 떠올리게 됐다. 지금까지 제 배가 불러 남 배고픈 줄 모르고 산 셈이다. 오랜만에 집안일 하는 남자가 됐다.

유럽 귀족의 은촛대 촛불 느낌 #눈부심 없어 안과 의사도 인정 #충전식 LED, 들고 다니면서 써 #흔들면 오르골 음악까지 나와 #캠핑·차박서 분위기 반전 역할

가구는 이사 가기 전까진 손대기 힘들다. 만만한 게 조명이다. 내친김에 기존의 할로겐 타입 전구를 신형 LED로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 그동안 달라진 LED 동네의 기술적 변화는 놀라웠다. 크기와 형태의 다양함은 기본이다. 이젠 집안의 교류 전원과 바로 연결해 쓰는 타입도 흔하다. 스마트 폰과 연동되어 켜고 끄거나 밝기가 조절되기도 한다. 잠시 신경을 끊고 산 동안 조명 분야 또한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는 중이다.

평소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친구에게 무수히 들었던 게 “어설프게 가구를 바꾸는 것보다 조명이 훨씬 효과적이야”라는 말이다. 불빛의 느낌으로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주위보다 약간 밝게 부분 조명하라는 실천 지침까지 곁들였다.

우연히 그의 집에 가보게 됐다. 소신을 그대로 실천한 그의 방은 과연 달랐다. 약간 어둡게 느껴지는 실내엔 뱀처럼 긴 원통형 조명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필요한 곳엔 스폿으로 빛을 비춘다. 살림집에서 본 조명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다. 놓인 조명 기구가 명품이어서가 아니다. 적절한 조명의 효과다. 이젠 그 집에 다시 갈 수가 없다. 얼마 전 돌연사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람은 갔어도 그의 방에선 여전히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올 게다.

몰라서 못하는 일은 없다. 알아도 하지 못하는 게 사람의 일이다. 절실해야 꼼지락거리게 되는 건 방 안의 전구 하나 가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의 조도를 낮추고 구석에 스탠드를 놓아 얼추 친구의 조언을 실천했다.

마르셀 반더스의 충전식 LED 조명 등 ‘벨라 오로라’. [사진 윤광준]

마르셀 반더스의 충전식 LED 조명 등 ‘벨라 오로라’. [사진 윤광준]

그래도 문제가 남는다. 식탁의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위만 비추는 조명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전선 때문에 위치가 고정되면 안 된다. 불빛은 촛불의 느낌을 내고 광량도 조절되어야 한다. 밥 먹고 커피 마실 동안만이라도 부드럽고 우아하며 매끈한 것을 곁에 두고 싶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조명 기구를 찾아봤다. 이럴 땐 잘난 척 말고 눈 밝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게 최고다. 신뢰의 강도가 높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향의 합치란 거의 불가능한 게 디자인 쪽 일 아니던가. 내 요구가 매우 구체적인 걸 알아차린 눈치 빠른 친구의 대답은 명쾌했다. “마르셀 반더스의 벨라를 사.” 명쾌한 답변에 대응이 찐득해지면 안 된다. “아! 알았어 고마워.” 전화를 끊고 바로 벨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즘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네덜란드 출신의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58)다. 키가 2m 넘고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 항상 슈트 차림의 세련된 패션 감각마저 갖춘 잘난 남자다. 우리는 풍차와 축구 감독 히딩크 말고는 네덜란드를 아는 게 없다.

암스테르담과 덴하그에 유명 디자인 스튜디오가 많다는 걸 보고 놀란 적 있다. 디자인 강국 네덜란드의 위상은 높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포함한 디자이너 마르셀 벤더스의 실력은 세계 유명 호텔 로비에서 확인된다. 특히 카타르 도하에 문을 연 몬드리안 호텔의 인테리어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현대의 건축 재료인 철과 유리의 차가움을 중화시킨 빅토리아 시대 풍의 레이스 달린 옷을 연상시키는 곡선 계단 때문이다. 유려한 곡선의 풍만함이 천장의 각진 조각에서 쏟아지는 빛과 대응되어 다채로운 표정으로 빛난다. 과거의 흔적과 현대의 시간이 다투지 않는 이형의 동거로도 얼마든지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마르셀 반더스 디자인의 특색을 한마디로 줄이면 “장식이 왜 나빠?”다. 이는 바우하우스 이후 10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해온 기능주의의 반발일 수 있겠다. 색채마저 지워 흰색과 검정색이 주를 이루고 직선으로 단순화시킨 형태가 좋은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는 것이니 모자라도 참고 견디라는 모더니스트들의 억압은 집요했다. 당연하게 여기던 장식은 부정당했고, 대안의 제시 또한 세월이 흘러 의심받고 있는 중이다. 마르셀 반더스는 이제 거꾸로 장식을 걷어낸 반듯함이란 필요 없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르네상스 이후 주변 유럽 국가들과 다른 길을 걸었던 네덜란드 플랑드르 화가들의 행보와 묘하게 겹친다.

장식을 부활시켜 디자인에 녹여내는 재주가 그의 특기다. 같은 생각을 펼쳤던 디자인 계의 선배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조명이 벨라(Bella)였다. 멘디니가 설립한 디자인회사 라문의 조명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업이기도하다. 종에서 힌트를 얻어 디자인했다. 종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소통의 구심점으로서 종의 상징성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보기에 따라 종의 형태는 신데렐라의 풍성한 치마 같기도 하다. 투명한 치마 속에서 비치는 빛은 신비로운 광휘로 다가온다.

벨라는 충전식 LED로 전선 없이 빛을 낸다. 들고 다니며 원하는 곳에 놓고 쓰면 된다. 식탁 위에 놓으면 유럽의 귀족들이 즐기던 은촛대의 느낌을 얼추 재현한다. 침대맡에 놓으면 잠들기 전까지 독서등으로도 좋다. 눈부심 없이 밑으로 비치는 부드러운 빛이 일품이다. 싸구려 중국제 LED에서 보이는 플리커(빛떨림)가 없다는 게 이토록 눈을 편안하게 하는지 알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검은 줄이 생기면 LED의 품질을 의심할 만하다. 벨라는 안과의사들이 인정하는 연색성 풍부한 눈에 좋은 빛을 낸다.

캠핑과 차박을 즐기는 이들은 새로운 용법으로 벨라를 사용한다. 야외에서 조명 하나로 반전되는 우아한 분위기와 있어 보이는 차별성 때문에 일부러 가져간다나. 이것도 아니라면 종처럼 쥐고 흔들어도 된다. 안에서 오르골 음악이 나오기 때문이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은 유리와 같은 질감과 투명도를 보인다. 반사되어 비치는 불빛의 영롱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겠다. 독일 바이엘사에서 특별 주문해 쓴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벨라 때문에 부분 조명의 효과를 새삼 실감했다. 현대판 촛대에 해당되는 게 벨라였다. 지금까지 전구는 전선을 벗어나 켜질 수 없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자유로움을 마르셀 반더스는 벨라라는 촛불로 마무리했다.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디자인은 의외로 단순하게 해법을 찾아간다.

윤광준 사진가
충실한 일상이 주먹 쥔 다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대 위에서 깨달았다. 이후 음악, 미술, 건축과 디자인에 빠져들어 세상의 좋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됐다. 살면서 쓰게 되는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일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심미안 수업』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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