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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던, 손편지 로맨스의 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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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00년대 초가 주무대인 로맨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주연 배우 강하늘은 “세대를 넘어서는 마음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요즘 친구들도 누군가에게 ‘카톡’을 길게 쓸 때 분명 영호가 쓰는 손편지 같은 설렘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 키다리이엔티·소니 픽쳐스]

2000년대 초가 주무대인 로맨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주연 배우 강하늘은 “세대를 넘어서는 마음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요즘 친구들도 누군가에게 ‘카톡’을 길게 쓸 때 분명 영호가 쓰는 손편지 같은 설렘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 키다리이엔티·소니 픽쳐스]

“답답함보다 오히려 더 깊은 교류를 나눴다는 느낌이었어요. 천우희 누나가 녹음한 (편지)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연기하다 보니까, 머릿속으로 이런 표정일 거야, 행동일 거야, 하고 상상하는 게 많았어요.”

영화 ‘비와 당신의…’ 주연 강하늘 #“기다림의 감정 변화 담으려 노력 #내 또래 아버지 역할 해보고 싶어”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에서 어릴 적 친구에게 무작정 편지를 보내는 삼수생 영호가 된 배우 강하늘(31)의 말이다. 지난달 22일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1주일간 20만 관객을 동원했다. 코로나19로 절대 관객 수는 적지만, 2003년 배경의 순수한 아날로그 로맨스에 끌려 극장을 찾은 이가 적지 않다. 부산에서 헌책방을 하는 소희(천우희)가 아픈 언니 소연(이설)에게 온 영호의 편지에 언니 대신 답장을 보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직접 만날 수는 없다는 게 소희가 내건 조건. 영호는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고 제안한다. 2003년 그렇게 시작된 영호의 기다림은 2011년까지 이어진다. 강하늘은 상대역 천우희와 거의 만나지 못한 채 촬영했다.

강하늘은 “(영호와 달리) 막 간절하게 바라는 성격이 못 된다. 웃으면서 재밌게 산다. 겉으로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만, 아버지의 가죽공방을 도우며 진로를 고민하는 영호의 모습은 “20대 초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공연하면서 하루하루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던 자신을 반영했다고 했다.

그는 2019년 군 제대 후 첫 드라마 주연작 ‘동백꽃 필 무렵’(KBS2)의 어촌동네 순애보 황용식 역할로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배우 천우희가 부산에서 헌책방을 하며 영호와 편지를 나누는 소희를 연기했다.

배우 천우희가 부산에서 헌책방을 하며 영호와 편지를 나누는 소희를 연기했다.

영호의 9년 기다림은 감정의 흐름을 세분화해 표현했다. “실제 제가 기다린다면 처음엔 설렘보다는 긴장일 것 같았어요. 기다리던 사람이 튀어나왔을 땐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다림이 분노도 됐다가 원망도 됐다가 그 모든 게 초월한 어떤 감정이 되겠죠. 영화적 시간으론 금방 지나가지만 그런 변화를 담아보고 싶었죠.”

영화 ‘스물’ ‘청년경찰’ 등에서 봐온 그의 코믹한 연기도 쉼표 같은 웃음을 준다. 그는 “영호를 그냥 나긋나긋한 톤의 인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아 허당인 모습들을 넣었다”면서 “감독님한테도 오케이를 받았다. 리얼한 연기를 좋아해 코미디라기보단 매 장면에서 있을 법한 느낌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다른 로맨스 영화와의 차별점으로 “남녀 관계가 서로의 삶에, 성장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들었다. 영호가 미래를 위해 결단 내리는 장면을 특히 공감했다면서다. “제가 아집 같은 게 있어요. 즐겁다,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야 하죠. 안 하면 분명 나중에 후회할 테니까요.”

20대 강하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쉬엄쉬엄해라? 그리고 20대 초반에 군대 갔다 와라. (웃음) 제가 스물아홉에 갔다. 20대 초반에 갔다 오는 게 승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데뷔 15년. 배우로서 지켜온 게 있다면.
“연기 처음 배울 때부터 작품보다 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작품 안에 역할이 있게 하고, 그 역할보다 내가 튀지 않는 것.”
도전하고픈 역할은.
“딱히 없다. 대본이 재밌으면 한다. 그런데 내 인생에 한 번도 없었던 경험을 하는 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현대에 사는 제 나이 또래 아버지? 그런 역할은 공부가 될 것 같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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