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손주들 조기 철수로 깨진 ‘어린이날 선물’ 할머니와 2박3일

중앙일보

입력 2021.05.05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90) 

휴직 기간에 손자를 안고 친정에 온 딸과 지내던 지인이 전화가 왔다. “남편은 애들 언제 가느냐고 수시로 묻고, 딸은 친정에서 오래 있을 심산인 것 같고….” 좁은 집에서 서로 눈치 보며 개기고 있던 차에 딸의 폰이 고장 나서 일찍 철수했단다. 작은 아파트에 사는 팔순 어르신도 “신형 전화기 속에 맨날 얼굴을 들이대니 어제 본 듯한 얼굴인데 집은 좁고 자주 오니 성가시더라” 하니 첨단 세상이 예전의…‘그리운 만남’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파트라는 실내 생활이라 더 그렇다.

고장 난 폰에게 넙죽 절하고 싶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너나없이 자식들의 뒷담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수다쟁이를 만들어준다. 우리 때만 해도 아기를 두고 동네 외출도 불안해서 못 했는데, 요즘은 친정엄마에게 맡겨놓고 폰으로 24시간 관리하며 일박 여행을 하고 오더라고…. 나도 변한 세상이 가끔은 감당이 안 된다며 맞장구쳤다.

첨단 세상이 예전의 ‘그리운 만남’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파트라는 실내에서의 생활이라 더 그렇다. [사진 unsplash]

첨단 세상이 예전의 ‘그리운 만남’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파트라는 실내에서의 생활이라 더 그렇다. [사진 unsplash]

어린이날은 이웃 고구마심기 봉사하기로 한 날이라 주말에 아이들을 데려와 재워 보내기로 했다. 외가에 오고 싶다는 손주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요리조리 미꾸라지같이 피해 다녔으니 요즘 할머니도 예전의 ‘정 많고 사랑뿐인 할머니’랑은 전혀 다르다.

내 자식을 키울 땐 라면을 세 개나 삶아 공깃밥 한 공기 넣어 말아 먹고, 돌아서면 또 그만큼씩 먹어대도 흐뭇하고 힘든 줄 몰랐는데 손주는 한 다리 건너 촌수인 걸 실감한다. 아이들의 치다꺼리에 한나절도 힘에 부친다.

이번엔 ‘어린이날 선물용 2박 3일’이란 생색도 낼 겸 금요일 ‘퇴근길에 갈 테니 주차장으로 내려오라’ 문자를 보내 놨다. 두 녀석이 동시에 ‘좋아요~’라고 답을 보내더니 가방을 둘러매고 내려와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아침 8시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딸기, 사과 등 과일과 주스, 식빵에 잼을 발라 두 개씩 주니 게 눈 감추듯 먹는다. 9시가 되자 아침을 안 주냐고 또 묻는다. 아침을 먹고 고추 심는 체험을 가르쳐주며 둘이서 심어 보라 하니 50포기를 물주고 북돋우며 잘 심는다. 이래서 농경사회에선 자식을, 특히 아들을 많이 낳아 인력으로 키웠나 보다. 그런데 요즘은 어른 도와 드리는 건 두 번째고 아이들도 계산이 먼저다. “할머니, 알바비 많이 주세요.” 보람 있는 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할머니의 욕심이다.

외가에 오면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겠다고 떼쓰며 울고불고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다 컸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폰이 안 열리니 심란하다. 멍하니 TV 리모컨을 자판기 두드리듯 정신 사납게 돌리며 나사 빠진 볼트처럼 뒹굴뒹굴한다.

“그림 맞추기(화투놀이) 게임할까?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하니 다 시시하단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난 후 둘이서 속닥거리며 비밀 대화를 하더니 나를 부른다.

“할머니 오늘 급한 숙제가 있어서 아무래도 집에 가야겠어요. 데려다주세요.”

그러자 둘이서 짜고 치는 고스톱같이 동생도 따라 후렴을 한다.

“저도 꼭 해야 할 것이 있어요.”

흐미, 뭔 일이래. 컴컴하면 밖을 안 나가던 녀석들인데…. 표정이 절박한 것 같아 늦은 저녁 아파트 입구에 내려주고 집에 도착하니 딸에게서 전화가 온다.

“글쎄, 그게 말이지, 할머니 집엔 와이파이가 안 돼서 살 수가 없더래. 호호”

외가에 오면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겠다고 떼쓰며 울고불고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다 컸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폰이 안 열리니 심란하다. [사진 unsplash]

외가에 오면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겠다고 떼쓰며 울고불고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다 컸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폰이 안 열리니 심란하다. [사진 unsplash]

며칠 전 만화를 보며 이해 못 한 구절이 지금 다시 보니 이해가 간다. ‘오락에 중독되어 종일 방에서 오락만 하던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부모는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죽어서라도 마음 편하라고 아들이 늘 끌어안고 살던 오락기도 같이 관에 넣었다. 그런데 아들이 부모의 꿈에 동시에 나타나 무언가 부족하다고 호소하더란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무엇이 부족하다는 건지 부모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 이제까지 오락만 하며 방에서만 살다가 방금 취업해 회사원이 된 친한 친구가 문상 와서 그 말을 듣고는 함께 태울 많은 물건 주위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Ps4를 태우면서 조이스틱을 같이 안 태워주면 나라도 곱게 눈을 못 감겠네요.”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인간 중심의 세상 인문학이라 말하지만, 늘 함께해야 하는 폰을 보며 “이것 또한 신세계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부적이려니” 하며 긍정 마인드를 가져본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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