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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아파트 '택배 갈등' 진실…노조가 끼자 갑질싸움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동구 G아파트 단지에서 지상의 택배차 진입 여부를 놓고 불러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민과 택배기사 간의 불신과 싸움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양쪽 모두 논란 확산은 원치 않는다. 또 양쪽 모두 해결을 바라지만 합의점 찾기에서 당사자들은 소외돼가고 있다. 엉뚱하게 ‘택배 본사와 전국 택배노조(이하 택배노조)’ 간 싸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택배 노조 등장에 주민과 택배기사간 협의 창구 막혀 #주민들은 "협의하다 뒤통수 맞아, 저상차량 배정 요청" #택배기사 "주민에 갑질한다 한 적 없어, 저상차량 가능해"

사건은 지난달 초 수면위로 떠올랐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 금지하고, 일부 택배기사들이 '문전 배송'을 거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4월부턴 지상에 택배 탑차를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고지했고, 택배 대리점 역시 그에 맞춰 준비해왔다는 점이다.

사전 고지와 준비로 해결점을 찾아가던 갈등은 택배노조가 개입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택배노조는 주민들을 향해 '갑질'이라고 몰아세웠다. 이후는 알려진대로다. 하지만 '사전 준비'를 해온 택배 대리점과 기사는 (지하주차장 출입이 가능한) 저상차량으로 택배를 날랐다.

최근엔 싸움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택배노조가 지난달 말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 대표와 이 회사의 해당 지역 대리점 사장을 노동부에 고발하면서다. ‘저상차량 사용을 주민대표와 일방적으로 합의했다’는 이유에서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도 시작했다. 하지만 택배노조 주장과 달리 CJ대한통운과 주민대표간 저상차량 이용 합의는 이뤄진 바 없다.

아파트 주민은 '억울', 택배 대리점은 '답답' 

갈등이 길어지면서 주민과 택배기사 모두 피로감을 호소한다. 아파트 주민들은 "졸지에 갑질을 한 고약한 사람이 됐다"며 억울해 한다. 주민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했다. 그래서 택배노조의 사과가 먼저 있어야 협의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대리점들은 협의 창구가 막혔다며 답답해 한다. 그렇다고 택배노조의 사과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택배기사 A 씨는 “노조가 기자회견을 한 뒤 주민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린 노조원도 아니고 갑질이라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CJ대한통운 본사 앞에 설치된 전국 택배노조의 시위텐트. 이수기 기자

CJ대한통운 본사 앞에 설치된 전국 택배노조의 시위텐트. 이수기 기자

택배노조는 당초 이 싸움에 끼어 들며 ‘근로조건 개선’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일하기 쉽도록 지상 출입구를 개방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처음부터 단지 담당 택배 대리점과 주민이 풀 문제였다. 양측은 이미 ▶지하거점 마련 ▶고(高)탑차 출입 가능한 지하 분리수거장 거점화 등의 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었다. 이번 싸움에서 택배 본사도, 택배노조도 결국 제 3자다. 특히 택배 본사가 나서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위반이 된다.

비슷한 갈등은 다른 단지에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인천의 S 아파트는 입주 전 사전협의를 통해 ‘실버 택배’를 도입했다. 또 G 아파트 인근 또 다른 단지는 처음부터 저상탑차의 운행에 합의했다.

G 아파트 역시 주민과 택배기사가 문제 해결의 주체여야 한다. 입주자 대표회의는 “(택배기사들에게) 결코 손수레로 배송하라는 등의 일방적 요구는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요구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다만 “단지 내 도로는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만큼 차량의 지상 통행을 허용할 수 없으니 여기 맞춰 배송이 가능한 택배기사분들께서 단지를 담당해 주십사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준비는 이미 택배 대리점들이 진행해왔다. 양측이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당사자끼리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택배노조도 택배 본사도 당사자가 아니다.

이수기 산업 1팀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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