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에는 패전처리 투수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5.04 00:03

업데이트 2021.05.04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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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찬호가 바람이 많이 불었던 2라운드 경기 도중 갈대숲에서 공을 찾고 있다. [사진 KPGA]

박찬호가 바람이 많이 불었던 2라운드 경기 도중 갈대숲에서 공을 찾고 있다. [사진 KPGA]

박찬호는 지난달 29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군산CC 오픈 1라운드에서 12오버파를 쳤다. 이날 라운드를 야구에 비유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안타도 많이 맞고 볼넷도 많이 허용하면서 5회를 마쳤다. 그다음 회에서 2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고 강판당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박찬호 KPGA 대회서 29오버파
무너져도 강판 없이 혼자 버텨야
KPGA 선수들 뛰어난 실력 확인

2라운드에서 박찬호는 골프에 강판이 없다는 걸 느꼈을 거다. 전반은 버디 2개 등 4오버파를 기록하며 그런대로 잘 버텼다. 그러나 후반 들어 이른바 ‘멘탈 붕괴’ 상황을 경험했다. 후반에만 13오버파를 쳐, 이날 경기를 17오버파로 마쳤다.

박찬호는 후반에만 퀸튜플 보기(+5)를 2개나 했다. 혹시 같은 타자에게 같은 회 만루홈런 두 방을 맞던 장면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선수 본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야구라면 선수 보호를 위해 바꿔주기라도 했을 거다. 그러나 골프에는 불펜도, 강판도, 패전처리 투수도 없다. 선수 혼자 다 해결해야 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그런 고통을 겪었다. 지난해 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다. 짧은 파3인 12번 홀에서 그는 공을 물에 세 번이나 빠뜨리더니 7오버파를 쳤다. 포기하고 싶었을 거다. 그는 경기 후 “이 스포츠는 가끔 엄청나게 외롭다. 혼자 싸워야 한다. (난타당해도) 아무도 마운드에 올라와 데려가지 않는다. 교체도 없다. 그게 이 게임이 독특하면서도 어려운 이유다”라고 말했다.

박찬호는 골프 실력이 괜찮다. 2016년 JTBC골프 스포츠 스타 이벤트 경기 당시, 기자는 현장에서 그가 404야드 치는 것을 목격했다. 장타 대회용 긴 샤프트 클럽이 아닌 일반 클럽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박찬호는 네 차례 스릭슨 투어(2부 투어) 예선에서 74, 75, 81, 83타를 쳤다. 이번에 1부 투어 군산CC 오픈에 도전하면서 나름 열심히 연습했을 거다. 그렇기에 70대 타수를 예상했을 거고, 내심 컷통과도 기대했을 거다.

부담 없이 치는 것과 압박감 속에서 치는 건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400야드 사나이’인 박찬호가 이번 대회에서 300야드를 넘긴 건 7번뿐이었다. 박찬호는 대회 전 박세리, 박지성과 함께한 TV 예능에서 프로 골퍼 도전을 공개 선언해 주목받았다. 그래서 다른 선수보다 훨씬 큰 부담감 속에서 경기했다고 봐야 한다. 코스도 박찬호에게 맞지 않았다. 해저드가 많아 장타자에게 어울리지 않고, 강한 바람도 많이 불었다. KPGA 김용준 경기위원은 “핀 위치도 어렵고 바람도 셌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도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박찬호는 그래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희망은 있다. 마스터스 파 3홀에서 10타를 친 우즈는 마음을 다잡고 나머지 6개 홀에서 버디 5개를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박찬호는 "나의 도전을 계기로 팬들이 코리안 리그를 존중하고 KPGA 선수들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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