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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높이30m 옹벽 말도 안돼" 전문가도 기겁한 판교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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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다음달 입주 예정인 경기 성남시의 한 아파트. 아파트 건물 바로 뒤에 거대한 옹벽이 있다. 함종선 기자

다음달 입주 예정인 경기 성남시의 한 아파트. 아파트 건물 바로 뒤에 거대한 옹벽이 있다. 함종선 기자

다음 달 입주 예정인 경기 판교신도시 인근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높이 30m, 길이 300m의 거대 옹벽 바로 앞에 지어져 있다. 아파트 11~12층 높이까지 옹벽이 있는 것으로 국내 아파트 단지 옹벽 중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고 긴 옹벽이다.

높이 30m,길이 300m 수직 옹벽 #건물과 이격 거리 불과 10여m #다음달 입주 예정 유명브랜드 단지 #성남시 "전임자가 인허가 내준 것"

거대 옹벽으로 삼면이 둘러싸인 이 단지에는 전용면적 84~129㎡ 중대형 아파트 1223가구가 들어섰다. 국내 10대 건설사 중 하나인 A건설이 지었다. 원래 공기업이 있던 부지였는데, 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민간에게 매각됐다.

아파트 사업을 할 수 있게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로 토지의 용도가 변경됐고, 사업자는 부지를 넓히기 위해 산을 수직으로 깎아 옹벽을 만들었다. 대지면적은 5만2428㎡이고 용적률은 316%다.

2019년 아파트 부지조성 공사 당시의 현장 모습.거대한 포크레인이 장남감처럼 보일 정도로 옹벽이 높고 크다. 네이버 항공뷰

2019년 아파트 부지조성 공사 당시의 현장 모습.거대한 포크레인이 장남감처럼 보일 정도로 옹벽이 높고 크다. 네이버 항공뷰

아파트 내 옹벽은 무너질 경우 큰 인명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설치 기준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우선 아파트 옹벽 높이는 15m가 최대치다. 산지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비탈면(옹벽포함)의 수직높이는 15m 이하가 되도록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절토(땅을 깎는 작업)시 시가화(市街化) 용도(아파트 용도 포함)의 경우는 비탈면의 수직 높이를 15m 이하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옹벽을 직접 보거나 옹벽의 사진을 본 토목과 교수, 기술사, 건축사 등의 관련 전문가들은 "보기에도 아찔한 위협적인 크기의 옹벽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인허가를 받아 설치됐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건설협회의 한 간부는 "요즘 조성되는 아파트에서 옹벽의 높이가 15m를 넘는 사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아파트 택지 조성작업을 담당하는 한 직원은 "LH가 조성하는 전국의 택지에선 있을 수 없는 옹벽 높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아파트를 지은 B건설사 담당자는 "우리 회사가 지은 아파트의 옹벽 높이는 2~12m"라고 전했다.

옹벽의 높이와 관련한 산지관리법 시행규칙. 산림청

옹벽의 높이와 관련한 산지관리법 시행규칙. 산림청

각 지자체는 최근 기준을 더 강화하고 있다. 용인시는 올 3월 '용인시 개발행위허가 운영지침'을 만들어 옹벽 설치 지침을 마련했다. 지침에 따르면 옹벽의 수직 높이는 6m를 넘을 수 없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9m 이하까지 허용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해 말 '경기도 산지지역 개발행위 개선 및 계획적 관리지침'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시달했다. 이 중 옹벽 높이는 6m 이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토지주와 건축업자,설계·토목회사들은 (산지를)훼손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땅값을 올려야 하니까 (개발)압력이 엄청날 것"이라며 "도가 기준을 마련해주면 시군이 (개발압력을) 버티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옹벽과 건물사이의 간격도 문제다. 옹벽과 건물과의 이격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최소 1대1이다. 옹벽 높이가 10m라면 옹벽에서 최소 10m 떨어진 곳에 건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아파트 단지는 건물벽체라는 옹벽의 역할을 하는 구조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최소 6.4m다. 그 뒤에 있는 원 옹벽과의 거리도 10m를 조금 넘는다.

사업자가 이렇게 옹벽을 만든 이유는 사업 부지가 비행기 운항과 관련한 고도제한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도제한에 걸려 높이 짓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30m가량 땅을 파서 부지를 조성했고, 그에 따라 옹벽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해당 부지 매각이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몇 차례 유찰되자, 성남시가 기부채납을 받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올려줬다"며 "허가받은 용적률을 사업자가 다 챙길 수 있게 설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도제한이 있는 상태에서 아파트를 최대한 많이 짓게 설계함에 따라 아파트 내 일부 부지는 바깥 도로보다 낮고,1층은 '반지하'처럼 아파트 내부 바닥보다 외부 조경 시설이 높은 위치에 마련됐다. 함종선 기자

고도제한이 있는 상태에서 아파트를 최대한 많이 짓게 설계함에 따라 아파트 내 일부 부지는 바깥 도로보다 낮고,1층은 '반지하'처럼 아파트 내부 바닥보다 외부 조경 시설이 높은 위치에 마련됐다. 함종선 기자

해당 부지는 공매로 나왔으나 몇 차례 유찰됐다. 고도제한과 옹벽 높이 때문에 아파트 건물을 12층밖에 지을 수 없어 여러 부동산디벨로퍼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지 매입을 포기했다.

이런 제한 조건에서 단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일부 동의 저층부 아파트 앞뒤로 옹벽을 마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대 8층까지 아파트가 비어있는 동도 있다. 아파트 동간 거리도 건물 높이의 0.5배로 짧다. 또 피트니스센터 등 주민 편의시설은 아파트 옹벽에 바로 붙여 지었다.

전문가들은 지진 등의 재해가 일어날 경우 토압(토지의 압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옹벽 붕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는 "옹벽이 가로 방향으로 길기 때문에 중간중간 보강 장치가 있어야 하고 옹벽 붕괴 조짐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벽체 변위 계측기라는 안전장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공사 관계자는 "보강 장치는 없지만 벽체 변위계측기는 4대 설치했다"고 말했다.

 옹벽과 가까운 일부 동은 최대 8층까지 아파트 없이 건물 구조물만 조성돼 있다. 함종선 기자

옹벽과 가까운 일부 동은 최대 8층까지 아파트 없이 건물 구조물만 조성돼 있다. 함종선 기자

이렇게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인허가를 내 준 것과 관련해서 인허가권자인 성남시 도시주택국 관계자는 "사실 성남시에서 이렇게 옹벽이 높은 아파트 단지는 없다"며 "이전 담당자가 인허가를 내준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주택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안 그래도 궁금한 점이 많아 건설회사,설계사무소 관계자들을 불러 여러 가지를 물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들인 심의위원들의 심의 회의를 거쳐 인허가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인허가는 적법하게 난 것으로 보고 준공검사 때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아주 깐깐하게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인허가는 2017년 2월에 났고,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였다.

시행사 관계자는 "단지 옆 R&D센터 등 성남시에 기부채납하는 부지들이 많아 특혜는 커녕 이 사업에서 손해를 볼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는 8억원 안팎이었고, 현 호가는 16억원 안팎이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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