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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인니 박지성’ 아스나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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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30면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2007년 7월에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는 동남아 4개국이 공동 개최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조별예선을 치렀다. 홈팀 인도네시아에는 ‘인니의 이동국’이라는 별명이 붙은 밤방 파뭉카스가 있었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골 감각을 갖춘 밤방은 인도네시아 축구 팬의 큰 사랑을 받는 스트라이커였다.

22살 인도네시아 대표, K리그2서 돌풍 #동남아 시장 공략할 ‘축구 한류’ 기대

한국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 밤방이 나왔다. 내가 “한국 프로 무대에서 뛸 마음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밤방은 “한국에서 뛰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소속팀과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K리그로 오지 않았지만 유창한 영어와 자신만만한 태도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요즘 축구계에는 ‘인도네시아 박지성’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K리그2 안산 그리너스에서 뛰고 있는 아스나위(22)가 주인공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은 신태용 감독의 추천으로 올해 2월 안산에 입단했다. 경기 영상을 보니 정말로 박지성을 쏙 뺐다. 오른쪽 측면에서 활약하는 아스나위는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준다. 스피드와 가속력을 무기로 측면을 파고들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며, 수준급 개인기를 무기로 직접 골도 노린다. 무엇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투지, 자신감이 박지성을 연상케 한다.

아스나위는 4월 24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K리그2 선두 대전하나시티즌과의 경기에서 ‘떠먹여 주는 패스’로 심재민의 결승 골을 어시스트했다. K리그 최초 인도네시아 선수로서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아스나위는 K리그2 8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도 뽑혔다.

인도네시아는 난리가 났다. 안산에 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신바람이 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제작한 ‘아스나위 하이라이트’ 영상은 유튜브에서 11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4000건에 육박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인도네시아어로 쓰인 응원 문구였다.

영상을 제작한 김동훈 PD는 “한국 축구 팬들이 손흥민(토트넘)을 보며 자랑스러워 하듯, 인도네시아 팬들도 아스나위가 K리그를 누비는 영상을 보며 자랑스러워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댓글을 남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스나위 신드롬’은 프로축구연맹이 지난해 도입한 ‘동남아 쿼터제’의 첫 결실이다. 연맹은 기존의 팀당 아시아 선수(1명) 외에 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적 선수 1명을 더 보유할 수 있게 했다. ASEAN에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10개 국이 가입해 있으며 인구를 합치면 6억이 넘는다. 세계를 향해 뻗어가려는 ‘K리그 한류’의 도약대가 바로 동남아 시장이다.

이 당찬 젊은이가 K리그2를 씹어먹고 K리그1 성문까지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까. 아니면 기량과 장단점이 탈탈 털려 ‘찻잔 속의 태풍’으로 멈춰버릴까. 어쨌든 아스나위가 K리그의 핫 이슈가 되었고, 덩달아 K리그(특히 K리그2)가 주목받고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아스나위 이전에도 베트남 국가대표 쯔엉(2016년 인천, 17년 강원)과 콩푸엉(2018년 인천)이 K리그에서 뛰었다. 그러나 이들은 체력 열세, 커뮤니케이션 문제 등으로 제 기량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한국을 떠나야 했다. 쯔엉은 K리그 구단이 자신을 홍보에만 이용하고 내팽개쳤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남아 쿼터제가 뿌리를 내리려면 꼭 필요한 선수를 가장 적절한 시점에 영입해 팀도 살고 선수도 사는 ‘윈-윈’을 모색해야 한다.

박지성이 세계 최고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뿌듯했던가. 밤잠을 설치며 박지성의 경기를 보면서 얼마나 환호하고 애를 태웠나. 그런 마음으로 ‘인도네시아 박지성’의 성장을 지켜보면 좋겠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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