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신 실패 사과 없이 ‘희망고문’하는 정부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0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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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30면

국무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무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스라엘 보건부 율리 에델스테인 장관은 최근 중앙일보 취재팀과의 현지 인터뷰에서 성공적 백신 전략 경험을 들려줬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코로나19 초기에 이미 백신 전략을 세우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다양한 제약사를 접촉했고, 물량을 제때 도입하기 위해 계약 날짜를 확실히 보장받았다. 특히 각종 변이에 대비해 2022년 물량까지 미리 확보한 유비무환 자세가 돋보인다. ‘백신 선도국’ 이스라엘의 성공 경험을 보면 한국 정부가 거울로 삼을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기본 책무에 충실했다는 대목이 빛난다.

홍 총리대행 “여름에 방역 완화” 섣불리 낙관
“백신 많은 미국도 선택권 없다” 거짓말 논란
화이자 1차 접종 예약 중단하는 난맥상 드러나

반면 문재인 정부의 백신 전략은 초기 방역 성과에 안주하다 타이밍을 놓쳤고, 지난해 여름 제약사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자만하다 뿌리쳤다. 뒤늦게 허둥대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확보한 물량조차 적기에 들여오지 못했다. 우리 국민이 지금 백신 보릿고개 고통을 겪는 이유다. 백신 전략의 총체적 실패이지만, 누구도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지 않는다. 무능함에 이은 무책임한 태도다.

그런데도 고위 공직자들은 사탕발림 약속을 쏟아낸다. 희망 고문을 넘어 뻥튀기와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실패를 가리기 위한 행태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회의에서 미국을 겨냥한 듯 갑자기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백신 사재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백신 전략에 성공한 미국을 지금 와서 탓할 처지인가.

홍남기 총리대행의 잇따른 언행은 정부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올여름 일반 국민의 접종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국민이 좀 더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누리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사회 전체의 방역 수준을 완화할 여지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9900만명분을 확보했다고 홍보했지만 지난달 24일 기준 실제로 들여온 백신은 387만명분에 불과하다. 하루 확진자가 500~600명 이상 쏟아지는 상황에서 장밋빛 전망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그는 또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 국산 백신이 개발될 수 있도록 총력 지원하고 있다”며 ‘백신 자립’을 공언했다. 하지만 정부가 5개 업체에 고작 600억원을 지원해 놓고 백신 자주권을 거론하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백신 선택권에 대한 당국자들의 발언을 듣다 보면 복장 터질 지경이다. 보건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달 28일 “지금 상태에서는 (백신) 선택권을 드릴 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같은 날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거짓말 논란까지 일으켰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백신 선택권을 부여한 나라는 거의 없는 거로 안다. 심지어 백신이 많이 남는다는 미국조차도 국가적으로는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주별로 백신과 마스크 정책이 다르지만, 하와이 등을 제외하면 상당수 주에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백신을 골라 맞는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백신 도입이 늦어지면서 접종 난맥상을 계속 드러내고 있다. 지난 30일 질병관리청은 화이자 백신을 맞는 75세 이상 고령층 접종 추가 예약을 사실상 중단했다.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수요가 큰 상황에서 주 단위 백신 도입으로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어 차질 없는 2차 접종을 위해 신규 1차 접종 추가 예약 자제를 요청했다는 것인데, 백신 전략 실패의 후폭풍인 셈이다.

이스라엘을 비롯해 영국·싱가포르·미국 등 백신 선진국은 속속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백신 여권으로 해외여행을 준비한다는 외신도 들린다. 부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11월 집단면역을 확신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책임 있는 당국자일수록 말이 앞서면 신뢰가 떨어진다. 국민의 눈은 입보다 결과에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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