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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거지' 위로하는 팩트 하나 "주식 3명중 2명 손해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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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7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인 박모(41)씨는 올 들어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때가 많아졌다. 특별히 큰 걱정거리가 생긴 건 아니다. 원인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투자 승전보’다. 박 씨는 “작년에 주식 시장이 워낙 좋았지 않나. 지인 중에 주식으로 2배씩 벌었다, 예전에 사 둔 코인(가상화폐)이 대박이 났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나만 뭐 하고 있었지? 이렇게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이지? 지금이라도 뭐든 사야하나? 이런 생각이 종일 든다”고 말했다.

건강한 재테크 돕는 마음관리법

코로나19 사태 이후 뜨거워진 재테크 열기만큼이나 개인들의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집이고 증시고 모두 오르는 막대한 유동성 시장에서 ‘나만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일명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다. 전문가들은 수익을 내고 싶은 욕구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투자행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불안감이 일상에 지장을 주거나, 건강 등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잠식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재무관리·심리학·정신의학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말로 평정심을 찾고 건강한 재테크를 돕는 ‘마음관리법’을 알아본다.

◇ 좋은 주식이 좋은 투자는 아니다

사진 언스플래쉬

사진 언스플래쉬

주식 투자의 가장 큰 함정은 ‘내가 저 회사를 잘 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가진 정보는 전체 시장 참여자에 비해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말해 내가 아는 정보는 이미 알려진 정보일 가능성이 높고, 내가 살 때 파는 사람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개별종목 투자가 어려운 이유다.
실적과 전망이 우수한 회사(종목)를 안다고 해도 수익을 내는 것과는 별개다. 채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강남 압구정의 아파트가 좋은 물건인 건 맞지만 좋은 투자가 되려면 싸게 샀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가격에 들어가고 있는지, 앞으로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떻게 될지 따져보지 않고 지금 좋다는 대상에 투자하는 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 수익률 30%가 기본? 입장 바꿔 생각하라

1955.4%, 1612.7%, 1124.1%. 지난해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주가 상승률 1~3위 종목들의 수치다. 이런 사례를 접해서일까. 사람들은 수익률이 30~40%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투자자의 기대수익률은 회사 입장에선 자본비용이다. 과연 30~40%의 비용이 발생하도록 놔둘 수 있는 회사가 많을까? 실제 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주식의 경우 장기 투자 시 현실적인 적정 기대수익률은 7~12% 정도다.

사진 언스플래쉬

사진 언스플래쉬

채준 교수는 “주식을 공부한다는 의미는 종목을 잘 찍는 게 아니라 어떤 리스크가 있고,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배우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경우 ‘인적 자본’이 한국에 있으니, 자산 분배차원에서 ETF(상장지수펀드)등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 눈에 보이는 ‘성공사례’, 팩트입니까?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S2’가 출시된 게 불과 10년 전(2011년)이다. 그 사이 손 안의 인터넷이 일상화하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뉴스와 소식, 정보를 접한다. 심지어 같은 내용을 10~30번 본다는 결과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의 확장성으로 성공 케이스가 더 많이 전달되고 주변에 돈 버는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몇 배 부풀려진 효과일 뿐,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고객센터에서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거래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고객센터에서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거래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코로나19 국면에서 주식시장에 뛰어든 신규 개인투자자들을 분석해 보니 3명중 2명(62%)은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임 교수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젊은 층의 투자열기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며 “다만 재기하지 못할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 등을 양성화시켜 왜 위험한지, 실제로 투자결과는 어떤지, 어떻게 투자하는 게 좋은지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그 맛’…투자도 ‘중독’될 수 있다

예금·적금을 하던 사람이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면 저축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처럼, 가상화폐로 세 자릿수 수익률을 경험한 사람은 주식 투자가 밋밋하게 느껴진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경제와 개인 재무상태가 불안정할 경우 더욱 복권과도 같은 일확천금을 꿈꾸게 된다. 장년층에 비해 20·30대 젊은 층은 리스크가 커도 ‘대박’이 날 수 있는 투자대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한 번 수익의 맛을 보면 알콜이나 마약처럼 일상생활을 제쳐두고 투자에 빠지는 행위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내가 투자에 몰입하는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때때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본인의 선택으로 하는 투자인지 ▶지금 하고있는 투자가 내 투자성향(고위험형 또는 원금보장형 등)과 맞는지 ▶투자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인지 등을 스스로 질문해 보면 좋다.

◇ 내가 가진 장점도 적지 않다  

지난 26일 서울의 한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6일 서울의 한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다. 뉴스1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경쟁심, 정당하게 번 돈을 자랑하고 누리려는 ‘플렉스(Flex)문화’는 개인의 성취감과 큰 관련이 있다. 성취감도 행복의 한 요소이기에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 임명호 교수는 “특히 2030세대는 아직 사회에서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 경우가 많아 주식이나 코인 등 재테크를 통한 성취에 더욱 끌리곤 한다”며 “결국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 등 궁극적인 해결책이 나와야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론 운동이나 취미활동 등 투자 외에도 성취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열정과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자존감은 소신있고 건강한 투자의 근간이다. 홍나래 교수는 “사실은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돈 말고도 내 직업이 가진 장점이 있는데 무조건 남과 비교하며 불행해하는 경우도 적지않다”며 “내 자신은 남과 같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내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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