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4명 소송 당해도 장애인 비하 표현…25만 시각장애인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27 15:06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찾아 위패봉안관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찾아 위패봉안관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외눈’ 발언 이후 장애인 비하 표현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외눈’, ‘벙어리’, ‘절름발이’ 등 정치인들이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혐오의 의미가 들어있는 표현을 상습적으로 써왔다는 비판이 커지면서다.

장애인 안중에 없는 정치인의 언어

추 전 장관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두둔하면서 “자유로운 편집권을 누리지 못하고 외눈으로 보도하는 언론들”이라고 썼다. 추 전 장관은 “양눈으로 보도하는 뉴스공장을 타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외눈’과 ‘양눈’을 비교해 일부 언론을 공격하는 의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3일 “진실에 눈감고 거짓말을 앞세우는 외눈박이 공세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추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외눈’ 표현을 썼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월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나와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고 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았다.

지난해 1월 23일 서울 용산역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마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게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비하 발언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23일 서울 용산역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마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게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비하 발언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끝이 아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기억연대 비리 의혹에 입장을 표명하자 “한쪽 눈을 감고 내 편만 챙기는 외눈박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은혜 의원은 지난달 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영선 후보 배우자의 일본 도쿄 아파트 보유를 비판하며 “(민주당은) 박 후보에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 했다.

장애인의 날에 의원들 상대 소송도

정치권의 장애차별‧혐오 발언이 이어지자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지체장애인 활동가 조모씨는 다른 장애인 4명과 함께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곽상도‧김은혜‧허은아 의원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1인당 위자료 100만원을 청구했다. 허 의원은 “집단적 조현병”, 이 의원은 “절름발이” 표현을 썼다. 소송을 도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측은 “공적인 책임을 가지는 정치인의 장애차별 발언이 끊이지 않아 법적 대응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의 날인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들에게 장애 비하 발언을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장애인의 날인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들에게 장애 비하 발언을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추 전 장관의 ‘외눈’ 발언이 국회의원 등 정치인 상대 소송이 제기된 지 3일 만에 나오면서 장애인단체는 26일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외눈 발언은 장애인 비하가 맞다. 추 전 장관은 장애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듣는 이는 불쾌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단체 연이어 성명 

총연맹은 당초 성명을 낼 계획이 없었지만 추 전 장관이 26일 “접두사 ‘외-’는 ‘혼자인’의 뜻도 있지만 ‘한쪽으로 치우친’이란 뜻도 있다. 시각장애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며 장애인 비하는 더더욱 아니다”는 해명을 내면서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총연맹 관계자는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추 전 장관의 해명으로 ‘외눈박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인식할까 봐 우려했다”며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들의 표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도 27일 성명을 내기 위해 시각장애인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외눈 장애를 포함해 시작장애로 등록된 장애인은 약 25만3000명(2019년 12월 기준)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추 전 장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장애인 차별적 표현을 무분별하게 쓰고도 이를 반성하거나 고치려는 움직임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며 “피감기관에 대해서는 엄정한 국회의원이 자신들은 인식 개선을 하려고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2018년과 2019년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참여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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