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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저소득층 암환자 돕는다더니 … 도시의 말기 환자들은 방치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종로구 창신2동의 한 쪽방에서 혼자 살던 송모(당시 61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송씨의 두 평 남짓한 월세방에는 구토물과 약병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송씨는 2003년 림프암 판정을 받은 뒤 인근 대학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경찰 조사 결과 암과 합병증에 시달리던 송씨가 혼자 약물로 고통을 견디다 사나흘 전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송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정부가 지난해 시작한 재가 암환자 관리 대상이었다. 그러나 송씨의 관할 보건소 측은 사망할 때까지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의료비 지원 확대 등 저소득층 암환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재가 암환자 관리사업도 그중 하나다. 간병할 가족이 없어 집에 홀로 방치돼 있는 저소득층 암환자를 돌봐준다는 목표다. 정부는 지난해 이 사업에 총 24억원(건강증진기금 50%, 지방비 50%)을 투입했다. 그러나 재가 암환자 사업은 정부의 의도와 달리 일선에서는 겉돌고 있다.

◆ 통계뿐인 등록 환자=보건복지부는 올해도 총 24억6000만원의 예산(지방비 포함)을 투입, 각 시.군.구 보건소를 통해 재가 암환자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19일 밝혔다. 그러나 대상인 저소득층 재가 암환자 약 5만 명 가운데 1월 중순 현재 전국 246개 보건소에 등록된 환자는 1만2000여 명에 불과하다.

송씨와 같은 사각지대의 환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물론 등록 환자들도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송씨의 관할지였던 종로구 보건소 담당자는 "방문간호 사업 실무자 4명이 기존 관리 대상인 2000여 명의 관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저소득층 환자 등과 함께 암환자들도 챙겨야 한다"며 "현재 등록된 재가 암환자 20명 외에 새로 환자들을 발굴할 여력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담당자는 "등록된 환자들에게도 주로 영양식이나 의료 소모품을 가져다줄 뿐이어서 남은 지원금은 반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말기 암환자는 여전히 뒷전=자궁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 후유증을 겪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의 손모(75) 할머니도 영양제나 파스.기저귀 등을 주로 지원받고 있다. 손 할머니는 "방문 간호사들이 인공 항문이나 피부 간호도 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애초 이 사업의 주요 목표로 내세웠던 것은 말기 암환자들에 대한 통증 관리나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이었다. 집에서 극심한 통증과 싸우며 죽음만 기다리는 말기 암환자들의 통증 관리를 할 수 있게 하겠다며 보건소 담당의와 공중보건의 등에게 마약성 진통제 처방 관련 교육도 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마약성 진통제를 구비한 보건소는 전국 246곳의 절반도 안 된다. 따로 금고를 마련해야 하는 등 관리가 까다롭고 도시 지역은 의료기관 접근성이 좋은 편이어서 의료급여를 받는 환자들에게 굳이 보건소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줄 일이 없다는 것이다. 또 충청지역의 한 공보의는"약사가 따로 없는 지방 보건소들의 경우 공보의가 모든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임하는 공보의가 전체의 30% 정도이기 때문에 한두 차례 교육과 지침서만으로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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