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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대란, 그게 끝이 아니었다...자동차 업계 천연고무 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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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태국 소엥 상 지역의 고무나무 플랜테이션 전경. 기후변화와 독과점에 타이어 소비량이 늘면서 천연고무 가격은 지난해 연말부터 상승하고 있다. 출처=방콕포스트

태국 소엥 상 지역의 고무나무 플랜테이션 전경. 기후변화와 독과점에 타이어 소비량이 늘면서 천연고무 가격은 지난해 연말부터 상승하고 있다. 출처=방콕포스트

천연고무 가격이 치솟고 있다. 코로나19로 라텍스 장갑 수요가 급증한데다 중장비 차량용 타이어 수요 증가가 맞물린 결과다. 여기에 천연고무를 재배하는 동남아 지역의 기후변화로 공급량이 확 줄어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에따라 특히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에 이어 고무 수급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란 우려가 나온다.

라텍스 장갑에 트럭용 타이어 수요 늘면서 #천연고무 가격 치솟아...1년 전의 거의 두 배

천연고무 가격이 상승한 건 지난해 중순부터다. 지난해 8월 오르기 시작한 싱가포르 천연고무 선물 가격은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1파운드(0.45㎏)당 1.082달러를 기록했다. 천연고무 가격인 1년 전인 지난해 3월 말만해도 1파운드당  0.613달러 수준이었다. 1년 사이 천연고무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싱가포르 천연고무 선물 거래 가격 추이. 지난해 8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료=ychart

싱가포르 천연고무 선물 거래 가격 추이. 지난해 8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료=ychart

천연고무가 선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건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적당히 단단하고 유연하면서 방수도 가능한 천연고무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재료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석유화학 기술의 발전으로 합성고무가 생산되고 있지만 내구성 측면에서 천연고무를 따라갈 수 없다. 합성고무가 천연고무를 시장에서 밀어내지 못한 이유다. 트럭·버스와 같은 대형 차량용 타이어와 라텍스 장갑, 운동화 등은 여전히 천연고무를 기반으로 생산한다.

트럭·중장비 판매량 증가가 고무 가격 견인

최근 천연고무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건 타이어 업계다. 정부 주도로 각국의 설비 투자가 속도를 내면서 트럭·건설용 타이어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유럽 대표 타이어 기업인 미쉐린의 올해 2월 트럭용 타이어 판매(누적기준)는 신차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교체용 타이어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6%가 늘었다.

여기에 대형 타이어를 장착하는 건설용 중장비 판매량도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중장비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굴착기 판매량은 29만2000대로 2008년 이후 가장 많았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물류량 증가와 인프라 투자 증가에 따른 트럭용 타이어 수요 증가가 천연고무 가격이 상승 원인”이라며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에 이어 천연고무 부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국 공영 BBC는 지난달 놀라운 재료이지만 부족한 재료(The wonder material we all need but is running out)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세계적인 천연고무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며 “개발도상국 경제가 성장하면 천연고무 수요는 향후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사진 BBC 홈페이지

영국 공영 BBC는 지난달 놀라운 재료이지만 부족한 재료(The wonder material we all need but is running out)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세계적인 천연고무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며 “개발도상국 경제가 성장하면 천연고무 수요는 향후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사진 BBC 홈페이지

기후변화와 독과점으로 천연고무 가격 상승 

기후변화와 독과점도 천연고무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세계 천연고무 생산량은 연간 1400만t.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가 세계 천연고무 의 80%를 생산한다. 하지만 2019년 태국에서 시작된 고무나무 질병으로 경작지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천연고무는 헤베아(hevea)로 불리는 고무나무를 통해 생산하는데 이를 대체할 작물이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동남아 경작지가 줄면 천연고무 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병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고무나무에서의 고무를 채취하기까지 6~7년이 걸리기 때문에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면 가격변동이 심할 수밖에 없다”며 “3대 주요 고무 생산국이 협의를 통해 고무생산량과 수출량을 줄인 것도 천연고무 가격이 높아진 원인”이라고 봤다. 영국 공영 BBC도 지난달 놀라운 재료이지만 부족한 재료(The wonder material we all need but is running out)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세계적인 천연고무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며 “개발도상국 경제가 성장하면 천연고무 수요는 향후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시장에선 천연고무 가격 상승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재성 애널리스트는 “장갑용 천연고무 사용량과 타이어 수요 증가로 10년 만에 천연고무 슈퍼 사이클이 펼치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천연고무 가격은 지난 2011년 1㎏당 6달러를 기록한 적이 있다. 당시엔 동남아 천연고무 생산지에서 발생한 홍수에 중국 자동차 시장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천연고무 가격이 무섭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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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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