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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은퇴준비?…계급장 떼고도 날 설명할 동사 한 줄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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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더,오래] 퇴사선배(3)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

평생직장은 이미 옛말, 이직 횟수는 늘고 근속연수는 짧아졌다. 먹고사는 방식이 달라진 요즘은 N잡러에 부업은 필수인 시대다. 취업과 동시에 퇴사를 꿈꾸고, 언젠가는 맞이할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의 삶을 대비한다. 인생 환승을 준비하는 퇴사선배의 커리어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는 약 10번의 퇴사를 경험한 ‘프로 퇴사러’다. 기자, 논설위원, 창업센터 리더, 삼성그룹 계열 임원 등을 거친 그는 자신의 커리어 고민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대표로 있는 헤이조이스를 설립했다. 헤이조이스는 여자들의 커리어 문제를 해결해주는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그에게 더 오래 일하기 위한 방법과 일하는 사람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들어봤다.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 [사진 이나리]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 [사진 이나리]

-언론계부터 스타트업까지 화려한 이력을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항상 하는 일이 천직이 아닌 것 같다는 갈증이 있었어요. 하고 있는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게 아닌데도요. 그래서 ‘일 자체에 성과가 나쁘지 않고, 적성에도 맞는데 왜 자꾸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할까’라는 고민을 오래 했죠. 그 결과 내가 찾고 있는 게 특정 직업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만의 정체성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일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직업에 대한 만족의 기준이 기자라든가, 마케터라든가 이런 직무의 이름이 아니었던 거죠. 늘 변화의 현장에 있는 걸 좋아하고 잘했어요. 일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내가 좋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을 때 굉장히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체인지 메이커’라고 저의 정체성을 정의해봤어요. 그랬더니 특정한 직무에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직장을 옮기거나 분야를 이동할 때도 큰 이질감 없이 결정했던 것 같아요. 특히나 나의 40대 이후 커리어는 대부분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졌어요.”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새로운 선택을 할 때 위험도와 안정성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실패해요. 그리고 이런 종류의 실패는 회복도 어렵고요. 내가 계산을 왜 잘못했는지 자책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커리어 선택에 있어 내가 정말 원하는 하나를 정해두는 게 좋아요. 그럼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된다 할지라도 대개는 원래 갖고 있던 그 목적 하나는 달성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선택의 기준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분명하게 하는 게 실패의 데미지를 줄이는 방법이에요.”


-더 오래 일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요즘은 파이어족처럼 빨리 은퇴하는 게 최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이 100살까지 살 거예요. 그래서 오래 일해야만 한다는 전제 자체를 가지는 게 중요해요. 이건 이제 선택이 아니에요. 그러고 나면 일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달라질 수 있죠. 한 직장에만 목숨 걸고 여기서만 잘하면 그 이후의 삶이 보장되는 시대가 지났잖아요. 내가 속한 섹터에 최적화한 사람이 된다고 50~60대가 됐을 때 내 커리어가 보장되지 않아요. 자기 커리어와 관련된 사이클을 길게 봐야 하는 이유에요. 회사형 인간이 아니라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할까.

“적어도 30대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온갖 학원에 다니는 10대처럼 자기에 대해 탐구를 하는 거예요. 보통 부모가 자녀의 취향과 적성을 찾아주려고 학원도 여러 곳 보내는 것처럼 사실 30~50대도 그렇게 해야 해요. 자기 일을 찾으려면 자신에게 쏟는 시간과 돈이 늘어나야 하는 게 당연하거든요. 오히려 그렇게 해야 멀리 봤을 때 비용 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두 번째는 명함을 빼고 나를 소개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명함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명함이 없어지는 순간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2의 명함, 지금 다니는 조직을 제외하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한 줄을 오랫동안 준비하는 거죠. ‘어디에 다니는 누구’가 아니라 ‘뭘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봐야 해요."

-좋아하는 일을 찾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자기가 진짜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와 어떤 면에서 맞는가에 대한 접점을 찾아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바둑을 진짜 좋아한다고 가정해보세요. 바둑이 돈 버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진짜 좋아하게 되면 유튜브에서 해설을 할 수 있는 거고요. 그게 안 되면 새로운 버전의 바둑판을 직접 만들 수도 있는 거예요. 발전시키는 방법은 무궁무진해요.”

그는 어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에“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시간을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회사에서 월급이 들어오고 안전할 때 내가 원래 속해있는 조직과 관계망이 아닌 쪽으로 나를 꾸준히 보내보세요”라며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자기 확신은 무너지기 쉽다고 강조했다.

-오래 일하는 시니어의 고충도 있다.
“사실 주니어가 시니어랑 일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시니어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이 안 통해서 그래요. 말이 안 통하면 당연히 같이 일하기 싫죠.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30대라고 할 지라도 나중에 커리어를 이어가다 보면 새롭게 만들게 될 파트너, 고객, 고용주가 나보다 젊을 개연성이 더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대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실천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노출되는 수밖에는 없어요. 그래서 자꾸 내 경계 안의 사람만 만나면 안 돼요. 나랑 띠동갑 정도 되는 사람하고 친구로 맞먹으면서 만날 기회에 자꾸 나를 던져보세요. 그들이 나를 떠받들어주지 않아도 상처가 안 나도록요.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세대와 섞이기에 무리가 없는 사람으로 본인을 만들어야 오래 일할 수 있어요.”

소속보다 훨씬 매력적인 '진짜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명함을 벗어나야 한다. [사진 헤이조이스]

소속보다 훨씬 매력적인 '진짜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명함을 벗어나야 한다. [사진 헤이조이스]

일하는 사람의 은퇴 준비는 절대 경제적인 준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장 떼고도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는 한 줄을 찾자. 직업이나 직무 같은 딱딱한 명사보다 생기 넘치는 동사로 나를 설명해보는 것이다. 그때 갖게 되는 나에 대한 확신은 그 어떤 외적인 성취보다 값질 것이 분명하다.

정예림 인턴 chung.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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