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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빌린 돈이 어느새 GDP 4분의1 됐다" 발칵 뒤집힌 발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에서 빌린 돈을 대신 갚아달라고? 그건 좀...”

중국 백신을 들여온 몬테네그로의 보건장관 [신화=연합뉴스]

중국 백신을 들여온 몬테네그로의 보건장관 [신화=연합뉴스]

유럽 발칸반도의 국가 몬테네그로는 요즘 큰 곤란을 겪고 있다.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며 중국에 큰돈을 빌렸는데 갚을 도리가 없어서다. 갚아야 하는 돈은 약 10억 달러(약 1조 1183억 원). 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돈이다. 급한 대로 유럽연합(EU)에 손을 내밀었지만 EU는 ‘안 된다’는 입장만 내놨다. 담보로 잡힌 땅, 기간시설 등이 위태위태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 몬테네그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나라에도 닥칠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발칸반도로 흘러 들어온 ‘차이나머니’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 유럽 공략 원하는 중국, 발칸반도에 공들여 와

중국이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 발칸반도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이다.

중국 화웨이 혁신개발센터가 들어선 세르비아 [신화=연합뉴스]

중국 화웨이 혁신개발센터가 들어선 세르비아 [신화=연합뉴스]

각종 인프라 건설과 에너지 개발 등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가장 돈독해진 나라가 세르비아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EU의 도움을 받지 못한 이 지역 국가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중국이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각종 의료장비를 지원해 줬기 때문이다. 백신도 적극 지원했다. 세르비아에선 백신이 남아돌고 있단 보도가 나올 정도다. “EU,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유일한 파트너가 아니란 인식이 커진 계기”(발칸 인사이트)였다.

경제적 협력뿐 아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역시 커져가고 있다. 유럽 외교위원회는 올 초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국은 핵심 경제 분야에서 필수적인 파트너가 됐을 뿐 아니라 문화ㆍ미디어ㆍ정치 분야에서도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신 접종으로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시내 [EPA=연합뉴스]

백신 접종으로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시내 [EPA=연합뉴스]

◇ 내부에서 반발 일고, EU에선 불안감 커져

그러자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각국에서 나온다. 환경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차이나머니가 흘러 들어오며 일자리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딱히 규제가 없어 환경 오염도 그만큼 심각해졌단 지적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닌 정부의 경우, 중국의 힘을 빌려 시민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단 분석도 나온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반중 정서가 점점 커지고 있다.

EU 역시 이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유럽 동쪽에 있는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릴 정도로 전쟁의 상처를 깊이 겪었고 그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가 낙후되어 있는 곳이다. 대부분 나라가 EU에 가입을 원하지만,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를 비롯한 절반가량이 후보국에만 등록돼 있는 상황이다.

중국 백신을 들여온 세르비아의 백신 접종 센터 [EPA=연합뉴스]

중국 백신을 들여온 세르비아의 백신 접종 센터 [EPA=연합뉴스]

그럼에도 유럽이 이곳을 주시하는 이유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이곳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중국이 이 지역을 베이스캠프 삼아 유럽으로 더 깊숙이 진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몬테네그로 부채 상환 문제와 관련해 “EU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워싱턴포스트)이란 비판이 유럽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먼저 나서 “발칸반도 국가들의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EU 집행위와 논의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의 우려에도 당분간 이곳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WP는 “현금에 목마른 곳에 중국이 모두 진출했다”며 “지금 EU가 손을 놓고 있으면 중국이 곧 이 지역을 장악할 것”이라 분석했다. 발칸반도가 향후 “미국과 EU, 중국 간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이 크다”(유럽 외교위원회)는 전망도 나온다.

서쪽으로 계속 전진하고 싶은 중국. 그리고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유럽과 미국. 이들의 패권 경쟁이 발칸반도에서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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