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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잡자’ 여당발 女입대론…‘이대녀 놓칠라’ 野는 입조심

중앙일보

입력

“민주당의 ‘노이즈마케팅’ 아닌가. 말리면 안 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촉발시킨 여성 군 입대 이슈를 놓고 국민의힘에선 이런 반응이 나왔다.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본격화한 민주당의 ‘이대남(20대 남성)’ 표심 잡기에 따라나섰다 자칫하면 ‘이대녀(20대 여성)’ 마음도 떠나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원외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 등 일부를 제외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입조심을 하는 분위기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구을) 의원(1971년, 전라북도 장수)이 27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 했다. 신인섭 기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구을) 의원(1971년, 전라북도 장수)이 27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 했다. 신인섭 기자

최근 민주당 의원들은 앞다퉈 ‘남녀평등복무제’, ‘군 가산점제 부활’ 등 군 복무 관련 이슈를 계속 꺼내고 있다. 차기 대선 도전을 일찌감치 선언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최근 발간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현행 병역제도를 ‘모병제’로 전환해 지원 자원을 중심으로 군대를 유지하되,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박 의원이 이 같은 주장을 한 직후인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여성징병제를 도입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1만 명 넘는 동의를 받기도 했다.

당내 2030 남성 의원을 중심으로 군 가산점제 주장도 활발하다. 민주당 최연소 초선 의원인 전용기 의원은 최근 “군 가산점 재도입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가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했다. 군 가산점 제도는 이미 199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상 평등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제도다. 그러나 당내에선 “전역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군 전문 경력이 인정될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김남국 의원)”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정한도 경기 용인 시의원은 “민주당이 여성을 우대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줘서 20대 남성은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에서 이 같은 주장이 빗발치자 21일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이 같은 이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합의'에 참여해야 할 국민의힘에선 “우리가 굳이 논의에 숟가락을 얹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신원식 의원은 2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남녀가 서로 윈윈(win-win)이 되는 사회적 구조를 짜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면서 “(민주당의 주장은)남녀를 갈라치기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노이즈마케팅’”이라고 꼬집었다.

신 의원은 “자의에 의한 여성의 병역참여는 환영하지만, 입대 의무화는 반대한다. 대신 남성의 군 복무와 여성이 겪는 출산 등에 대한 사회적인 존중이 더 커져야 한다”면서도 “민주당이 촉발한 논의는 ‘보여주기식’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 국회 국방위 소속 야당 의원실 보좌진은 “해당 이슈에 대해 공부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민주당의 ‘쇼잉(showing)’에 끌려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서 70% 넘는 20대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민주당이 “표심잡기”에 나섰다는 게 국민의힘의 분석이다. 여성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법조인 시절 여성계 이슈에 목소리를 내왔던 전주혜 의원은 “민주당이 ‘이대남’ 표심 얻으려고 꺼낸 카드”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대녀’가 왜 우리 당에 투표하지 않았는지 우리도 스터디 등을 통해 분석 중”이라면서도 “어떻게 갈등을 해소할지를 고민해야지,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대 몰래카메라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경찰이 불평등한 편파 수사를 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혜화역 일대에서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정동 기자

'홍익대 미대 몰래카메라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경찰이 불평등한 편파 수사를 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혜화역 일대에서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정동 기자

정치권에선 통상 젠더 갈등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이슈로 꼽힌다. 한 쪽 편을 섣불리 들다간 반대쪽 절반의 표심이 떠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2018년 6월 ‘혜화역 시위’ 직후 젠더갈등이 증폭됐을 때도 직접 해당 이슈에 발 벗고 뛰어든 의원들은 많지 않았다.

최근 야권에서 불거진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간 ‘페미니즘’ 설전에도 ‘참전’하는 의원들은 거의 없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 “남녀 편 가르기 하는 페미니즘과, 고통받는 여성과 함께 한 페미니즘은 다르다”면서도 “두 사람의 논쟁은 서로 살짝 어긋나 있다. 갈등을 부추긴 건 우리 세대 책임”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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