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정완의 시선

‘청년 좌절’의 동의어 ‘코인 열풍’

중앙일보

입력 2021.04.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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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코인(암호화폐)은 엉뚱한 곳에 난데없이 뚫린 만화 속 포털(관문) 같은 거라고. … 닫히기 전에 얼른 발부터 집어넣으라고. 오직 이것만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 같은 거라고.”

답답한 현실에 희망 없는 미래
마법 같은 탈출구 찾는 청년들
허무한 악몽으로 끝나지 않길

장류진 작가의 신작 소설 『달까지 가자』에 나오는 주인공 다해의 고백이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의 20대 후반 직장인인 그에겐 암호화폐는 마법 같은 존재다. 갑갑한 직장생활과 학자금 대출 부담 등에 체념하며 살던 그는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든 뒤 딴 사람으로 변한다.

전 재산을 걸었지만 암호화폐가 얼마나 혁신적인 기술인지 아닌지는 별로 관심도 없다. 해외 토픽성 기사를 몇 개 읽어본 게 암호화폐 관련 지식의 거의 전부다. “블록체인이, 암호화폐가 뭔지도 모르면서… 어떤 혁신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내겐 그 기술이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투자 위험을 경고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본인도 ‘묻지마 투자’의 위험을 인정한다. “말로는 달까지 갈 거라고 하면서 이러다 결국 쫄딱 망해버리면 어떡하지, 매일 걱정하면서 떨었어.”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뭔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보수적인 조직, 멍청한 리더, 짜디짠 박봉 … 여기(직장)에서는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현실 청년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최근 암호화폐 열풍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30분 만에 1000배가 올랐다가 몇 시간 뒤 3분의 1로 꺼지는 암호화폐(아로와나토큰)는 그저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도지코인)에 장난삼아 기념일(도지데이)을 정하고 그 날에 맞춰 시세를 끌어올렸다가 팔아치우기도 한다.

소설은 이런 위험한 베팅에 겁도 없이 뛰어든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물론 모든 청년이 암호화폐 열풍에 빠진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뭐라도 탈출구를 찾아보려는 청년들의 몸부림은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문제다.

20~30대 청년들이 앞다퉈 암호화폐 열풍에 뛰어드는 모습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네 곳(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의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석달간 신규 가입자 중 30대 이하는 162만 명이었다. 전체 신규 가입자 세 명 중 약 두 명꼴(65%)이다. 20~30대가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맡긴 돈(예탁금 잔액)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2조2500억원이 넘는다. 이들은 암호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보다 훨씬 변동성이 심한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대안 암호화폐)이나 ‘잡코인’(잡스러운 암호화폐)에 더 몰리는 분위기다.

암호화폐 열풍의 이면에는 이런 청년들의 좌절과 불안이 있다. 한때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부를 정도로 역동적이던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어느 순간 기회의 문은 바늘구멍이 돼 버렸다. 잠재 성장률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도 보수적인 조직 문화에 숨이 막힌다.

여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집값은 청년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했다. 알뜰히 월급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다. 집값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정치권은 무능과 무책임, 위선적인 두 얼굴만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러다 평생 내 집은 구경조차 못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지난해 ‘패닉 바잉’(공황 매수)을 불렀다. 주택 시장에서 패닉 바잉이 잠잠해지자 이번엔 암호화폐 거래에 불이 붙었다.

안타깝지만 청년들의 좌절과 불안을 단숨에 해결할 만한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노인 인구의 빠른 증가세와 세계 최하위권 출산율은 우리를 ‘일본화’의 어두운 길로 끌고 가는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언젠가 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두 가지의 후유증은 두고두고 큰 숙제로 남을 것이다. 저성장과 양극화다.

소설은 ‘가즈아’와 ‘존버’(끝까지 버틴다)를 외치던 주인공 청년들이 결국 대박을 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판타지 해피엔딩이다. 현실은 전혀 딴판일 것이다. 투기 열풍의 끝이 좋았던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영원히 오르기만 하는 투자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운 좋게 잘 팔고 나오는 소수는 돈을 벌겠지만 훨씬 많은 사람은 실패의 쓴맛을 볼 것이다. 인생역전의 달콤한 꿈이 언젠가 악몽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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