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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독어교사 안 뽑는데…교·사대 뒤늦은 구조조정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2021학년도 서울특별시 공립 유치원·초등학교·특수학교(유치원 ·초등)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 제2차 시험에서 한 응시생이 배치표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2021학년도 서울특별시 공립 유치원·초등학교·특수학교(유치원 ·초등)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 제2차 시험에서 한 응시생이 배치표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19일로 예정됐던 부산교대와 부산대의 학교 통합 양해각서(MOU)를 체결식이 총동창회와 학생 반발에 부딪혀 취소됐다. 학교 통합에 반대하는 부산교대 학생 100여명이 집회를 벌였고 동문들까지 나서 교문을 막았다.

학교에 들어서지 못한 차정인 부산대 총장이 발길을 돌리면서 이날 MOU 체결식은 무산됐지만 두 학교는 통합을 변함없이 추진할 방침이다. 학령인구가 줄어 초등 교원 신규 임용이 줄어든 상황에서 교대가 존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한국외대는 사범대 학과 통폐합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9일 학교측이 이사회에서 프랑스어·독일어·중국어교육과 인원을 30% 줄이고, 외국어교육학부로 통합하기로 결정해서다. 사범대 학생과 동문, 교수들까지 이같은 결정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와 교대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이 커지고 있다. 교대가 일반대에 흡수통합되거나 사범대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대학측과 구성원간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가 '예고된 미래'인데도 교육 당국의 대처가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14년째 임용 없는 독어 교사…"학과 유지 힘들어"

19일 부산교대 본관 앞에서 부산교대 학생들이 부산대와 통합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날 예정된 부산교대와 부산대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은 부산교대 총동창회와 학생회 반대로 일단 취소됐다. 연합뉴스

19일 부산교대 본관 앞에서 부산교대 학생들이 부산대와 통합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날 예정된 부산교대와 부산대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은 부산교대 총동창회와 학생회 반대로 일단 취소됐다. 연합뉴스

한국외대는 지난 2월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에서 C등급을 받았다. C등급을 받은 대학은 교원 양성 정원을 30% 줄여야 한다. 대학 측은 현재 정원이 18명인 프랑스어·독일어교육과 정원이 14명이 되면 개별 학과로 운영하기 어렵다고 보고 통폐합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들은 규모가 줄어든다고 해서 학과를 없앨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김석준 한국외대 독일어교육과 총동문회 수석부회장은 "부산대나 한국교원대·전북대 등은 8~9명의 규모로 학과를 유지하고 있어 규모를 문제 삼는 건 설득력이 없다"며 "소규모 학과로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학과에 불이익을 주려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사범대는 교사 양성이라는 목적을 가진 대학이지만 학생 수가 줄고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아예 교사를 뽑지 않는 전공도 있다. 지난해 전국의 프랑스어교육과는 5개 대학에서 59명을 뽑았고, 독일어교육과는 6개 대학에서 69명을 선발했다. 하지만 교육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어는 2008년, 독일어는 2007년을 끝으로 교사 임용이 없었다.

제2외국어 중등교원 임용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제2외국어 중등교원 임용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09년 한국외대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한 A(35)씨는 "동기나 주변 선후배를 통틀어 독일어 교사가 된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교사를 하려고 온 친구도 복수전공으로 영어·국어 교사가 됐고, 나머진 회사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6000명 뽑는데 5만명 응시…'교원 사관학교'는 끝

지난해 11월 21일 2021학년도 대구시 중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 치러진 대구 달서구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응시자들이 고사장 입실에 앞서 손 소독과 발열체크를 받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21일 2021학년도 대구시 중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 치러진 대구 달서구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응시자들이 고사장 입실에 앞서 손 소독과 발열체크를 받고 있다. 뉴스1

교원 임용 축소로 교·사대의 교원양성 기능이 약화했지만 교육 당국과 대학의 대처는 늦었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등교사 선발 인원은 6455명이었지만, 응시자는 5만1946명에 달했다. 매년 교원 선발은 줄어드는데 교·사대 졸업자는 거의 줄지 않아 임용시험 경쟁률이 치솟는 상황을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오직 교원만 양성하는 사범대의 기능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사대·교대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목적형 학과'였지만, 이제 '교원 사관학교'는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겼어도 법학과가 필요한 것처럼 형태를 바꿔야 한다"며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개방형 학과'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인천 남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원격 수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인천 남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원격 수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소규모 학과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광역화'도 대안으로 꼽힌다.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규모가 작은 학과는 여러 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광역화'로 크기를 키워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며 "졸업 후에는 한 지역에서 여러 학교에 다니며 소규모 수업을 운영하는 순회교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 미룬 교육당국…"교직 개방 서둘러야" 

교육계에서는 교·사대 구조조정을 사실상 각 학교에 떠맡긴 교육 당국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는 학생 감소에 따른 교원 양성 규모 축소를 권고했지만, 정작 교·사대 통합 등의 민감한 문제는 중장기 과제라며 결정을 미뤘다.

대학에서는 구조조정을 앞장서 추진하기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간 학과 공동 운영 같은 아이디어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반발이 가장 큰 문제"라며 "특히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이 없는 서울권 대학은 대학들이 교수 반발을 무릅쓰고 사범대 규모를 줄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진경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미래 학교와 교육과정에 적합한 교원양성체제 발전 방향' 정책 집중 숙의 결과 및 권고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진경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미래 학교와 교육과정에 적합한 교원양성체제 발전 방향' 정책 집중 숙의 결과 및 권고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수 만 명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이른바 '임용 낭인'이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교사를 만들기 위한 교·사대 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전공자가 교직에 진출하는 영국이나 핀란드 등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2025년부터 본격 시행하는 고교학점제에 대비하려면 다양한 수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 배경을 가진 교사를 공급할 수 있는 체제가 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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