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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은 시대 착오, 문화 수입이 더 중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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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호 21면

한국적인 것은 없다

한국적인 것은 없다

한국적인 것은 없다
탁석산 지음
열린책들

‘국뽕 시대를 넘어서’라는 부제처럼 우리는 지금 ‘국뽕 시대’를 살고 있다. 마치 ‘히로뽕’을 맞은 듯 한국을 과도하게 자랑스러워하고 우쭐거리는 시대다.

방송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대표적 ‘국뽕’ 콘텐트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인천공항의 위용에 놀라고, 와이파이가 터지는 지하철에 감탄하고, 보쌈과 막걸리에 환호한다. 그런 외국인을 보며 ‘역시 한국이 최고야, 이제 선진국이야’라고 흐뭇해한다. 유튜브에서는 한국의 막강한 군사력,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한국의 기술력, 러시아 새댁이 시집와서 느끼는 한국의 위대함을 소개하는 B급 콘텐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BTS를 비롯한 K팝에 전 세계가 열광한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올해는 세계 영화계에서 ‘미나리’가 각광받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외국인도 동의할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은 없다』의 저자인 철학자 탁석산의 눈엔 겉보기만 그럴싸한, 실체가 없는 ‘거짓 명제’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중앙포토]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중앙포토]

그는 “한국인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것이 곧바로 한국의 자랑이 되고, 한국의 우수함을 증명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만약 성공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BTS가 세계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 국가가 BTS에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되묻는다.

‘국뽕 시대’를 사는 우리는 문화의 수출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저자는 문화의 수입이 더 중요하다고 외친다. “문화 수입 없이 문화 발전은 없다. 독자적인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는 교류 속에서 즉 수입과 수출 속에서 싹트고 융성한다.”

피겨 여제 김연아가 바로 ‘교류를 통해 융성해진’ 사례다.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사람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카타 세이지다. 코치는 캐나다 사람이다. 배경 음악의 작곡가는 러시아나 영미권 사람이기 십상이다.

김연아·기생충·BTS가 한국적이어서 세계적인 게 아니라, 그 콘텐트의 개성과 내용과 형식이 다른 문화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초일류’이기에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봉준호 감독은 2020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통해 영화를 배웠다”고 밝혔다.

저자는 한국인의 기저에 깔린 정체성도 깊이 들여다본다. 그는 세속·이성중시-전통·종교중시, 생존중시-표현중시라는 분석 방식을 통해 한국인은 강한 세속 합리성과 생존 중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학설을 소개한다. 또 ‘욕망충족이론’을 통해 왜 한국인이 내세보다는 현세의 가치에 집중하는지를 짚어본다. 한국인은 정말 현세의 가치를 중시할까.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한 이슬람이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또한 티베트의 삶도 우리에게는 아직 신비하게 보인다”고 설명한다.

‘아파트와 한옥은 정반대’라는 통념과 달리 한국 아파트에 숨어있는 한옥 코드를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 생각만 하게 되듯 『한국적인 것은 없다』를 읽는 내내 ‘과연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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