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국산 백신 개발의 걸림돌은 수천억원 드는 임상 비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제넥신 우정원 대표

 우정원 제넥신 대표 이사가 7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GX-19N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GX-19N을 위한 특수 주사기다. 전기자극으로 세포를 열어 DNA백신 약물이 잘 전달되도록 만들었다. 김경록 기자

우정원 제넥신 대표 이사가 7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GX-19N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GX-19N을 위한 특수 주사기다. 전기자극으로 세포를 열어 DNA백신 약물이 잘 전달되도록 만들었다. 김경록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소식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혈전증 문제로 논란을 겪다가 30세 미만 접종 중단으로 매듭을 짓더니, 이제는 또 얀센까지 같은 문제를 드러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둘 다 한국이 어렵사리 도입선을 뚫은 코로나19 백신들이다.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2.3%. 이스라엘이 백신 접종률 세계 1위(61.5%)로,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오는 18일부터 모든 학교 운영을 전면 정상화하고, 영국(47.3%)과 미국(35.7%)마저 일상 복귀를 준비하는 것과는 하늘 땅 차이다. 어쩌다 비 기다리는 천수답처럼 바다 밖 백신만 바라보는 처량한 신세가 됐을까.

코로나19 백신 개발 국내기업 5곳 #제넥신, 2월부터 임상 2상 진행 중 #포기하면 다음 팬데믹 대비못해 #“생각의 전환과 지원이 필요하다”

사실 국내에도 늦긴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제넥신·유바이오로직스·셀리드·진원생명과학 등 5개사가 그들이다. 그중 성영철(65)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창업한 바이오 벤처기업 제넥신의 개발 속도가 그나마 제일 빠르다. 지난달 초 국내 기업에선 처음으로 임상 2a상에 들어갔다. 제넥신은 올해 말 코로나19 백신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제넥신 본사를 찾아 우정원(61) 대표이사를 만났다. 해외임상 파트너인 인도네시아 제약사 칼베와 화상회의가 길어져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외국산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논란이 많다. 국산 백신 개발사 입장에서 마음이 복잡하겠다.
“후발주자로서 조급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접종률이 올라가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줄어든다. 가만있어도 확실한 백신을 맞을 수 있는데, 임상시험에 참가하면 (블라인드 테스트 때문에) 가짜 백신을 맞을 수도 있지 않나. 결국 임상 대상자가 많아야 하는 3상에서는 아직도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나라에 가서 임상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선진국 백신이 있긴 하지만, 최근 사태에서 보듯 아직 공급보다 수요가 넘친다. 우리는 그런 쪽을 잘 찾아서 개발을 계속해야 한다.”
지난 2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국내개발 동향과 전망'을 주제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국내개발 동향과 전망'을 주제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제넥신은 백신 개발이 어디까지 왔나.
“지난 2월 26일 국내에서 임상 2a상에 진입해 15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일에 대상자 150명에 대한 첫 번째 백신 투여가 모두 끝났다. 국내 임상과 별도로 해외임상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16일에 인도네시아 식약처에 임상 2,3상 시험 승인요청을 제출하고 글로벌 임상 개시를 준비 중이다. 총 3만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을 할 예정이다.” (임상1상은 소규모 지원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주로 시험하는 것, 2상은 임상 규모를 키우면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같이 보는 것이다. 3상은 수천~수만명을 대상으로 효과와 용량을 확인하는 최종 임상과정이다. 2상을 a,b처럼 나누기도 하고, 비상 상황에서 2상과 3상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 완성되나.
“3상에서 3만명 임상시험이 완성되는 시기다. 돈만 있다면 연말에도 마칠 수 있다. 3만명 중 코로나19 증상을 동반한 확진 사례가 150명이 발생해야 한다. 이들 중 누가 위약을 맞은 사람인지, 백신을 맞는 사람인지 확인하면 백신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 관건은 임상시험과 백신 생산에 필요한 돈이다. 인도네시아 최대 제약사 칼베와 글로벌 임상 3상을 같이 하는데, 칼베는 3상 임상시험을 대행해주는 대가로 백신 1000만 도즈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도 돈이 수천억원 들어간다. 나눠줄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
확산 비상이 걸린 15일 대전 중구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은 어르신들이 이상반응 관찰을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확산 비상이 걸린 15일 대전 중구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은 어르신들이 이상반응 관찰을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칼베와 대량공급을 위한 선투자 의향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도와서 3상을 빨리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백신 논란에서 보듯 ‘백신 주권’이 중요하다. 다행히 대통령도 국내 기술로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업이 혼자 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지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임상에만 최소 1500억원은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생산에 필요한 운영비와 재료비를 포함하면 수천억원 이상 더 필요하다.” (제넥신은 지금까지 93억원을 지원받았다. 지난 12일 정부는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들을 대상으로 올해 약 68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지원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애초 계획이 많이 미뤄졌는데.
“인정한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백신 GX-19 개발에 착수하고, 6월에 임상 1상 승인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외국보다 두 달 늦은 정도였다. 당시 임상 3상 수행에 재정적 지원이 있다는 전제하에 올해 9월 개발을 완료하고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들이 전방위적 투자와 지지를 받으면서 우리보다 엄청 빨리 개발을 끝내고 지난해 말에 긴급사용승인까지 받았다. 이처럼 어차피 늦은 상황에서 타사와 차별성이 크지 않은 백신으로는 경쟁력이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GX-19보다 진화한 GX-19N으로 다시 임상 1상 승인을 받았다. 그게 지난해 12월이다.”
지금 국내 상황을 보면 그때 그냥 GX-19로 가야 했던 것 아닌가. 다른 문제가 있었나.
“당시에도 GX-19로 1상을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그대로 갔다면 상용화 시점이 조금 더 빨랐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몇 달 빠른 것보다는 베스트가 될 수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GX-19 임상을 통해 DNA백신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게 됐다. 전체 일정으로 보면 3개월 정도 늦어진 거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제넥신 코로나19 백신의 장점이 뭔가.
“우리 백신은 DNA백신, 즉 코로나19 바이러스의 DNA 서열을 이용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백신이다. 병원균 자체를 사용하는 전통 백신에 비해 부작용이 낮아 안전하다. 새로 개발 중인 GX-19N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과 뉴클리오캡시드 항원을 동시에 타깃 하도록 업그레이드한 제품이다. 킬러 T세포를 유도해 내기 때문에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중화항체를 주로 유도하는 다른 백신들과 비교해 변이에 대한 방어능력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초저온에서 보관·유통해야 하는 타사 제품과 달리 상온에서 3개월 이상 보관 가능한 점도 차별점이다.”
한국은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기엔 아직 기술 축적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에는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기존 백신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 위주로 개발돼 왔다. 한국에서는 그간 백신을 제대로 개발해 본 경험이 있는 기업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제넥신도 예방 백신은 이번에 처음 개발하지만, 같은 DNA 플랫폼 기반으로 치료 백신을 개발해왔기 때문에 비교적 축적된 기술이 있는 편이다.  그동안의 축적된 기술이 부족하다고 지금 포기하면, 다음 팬데믹 상황에서는 더더욱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제넥신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완주하고자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외국 백신을 미리 잘 확보해서 쓰면 되지 않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첫 접종은 당연히 해외 백신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여러 변이 바이러스 출현과 백신 유효기간(이스라엘의 경우 6개월)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 백신은 한번 접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감처럼 매년 맞아야 하는 백신이 될 가능성도 크다. 앞으로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한다고 가정한다면, 백신에 대한 주권을 보유했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백신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기업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서구처럼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백신 기초 연구에 대한 생각의 전환과 지원이 필요하다. 백신 개발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다. 단순히 개별 기업이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국방의 개념’으로 준비하고 사전에 미리 예측해,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내년 우리나라 국방 예산이 52조9000억원으로 책정되었는데, 그 예산의 몇 %만 백신 개발 등에 활용된다면, 바이오 벤처들이 안심하고 긴 시간이 걸리는 프로젝트의 연구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또 올 수 있을까.
“당연하다. 인구 증가에 따른 개발과 지구 온난화 등으로 앞으로 더 많은 바이러스의 출현이 예상된다. 이에 대비한 사회적·환경적·생물학적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속적인 대유행에 대비한 다각적인 연구 진행이 필요하다. 변종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뿐 아니라, 비상 상황에서 임상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긴급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위한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 백신에 목매달고 살아야 하나.”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우정원

1960년 서울 생. 서울대 약학과 학·석사, 미국 코넬대 미생물학 박사, 하버드대 박사후 연구원,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서울성모병원 연구교수, 2013년제넥신에 입사, 연구개발실장과 연구소장을 거쳐 올해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