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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확진자’로 시작된 대구의 코로나 1년, 결정적 순간 담은 책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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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시청으로 자정까지 좀 들어와 주셔야겠습니다.”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이경수 교수, 정해용 전 특보 공저

지난해 2월 18일 이경수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교실)가 대구시로부터 받은 전화다. 이날은 대구시에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이른바 ‘31번 환자’라고 불리는 환자가 나온 날이다. 이 교수가 수화기 너머로 들은 이 한 마디는 책의 첫 문장이 됐다.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사진)엔 이 교수가 정해용 전 대구시 정무특보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상황관리반장을 맡아 고군분투했던 경험담을 담았다.

171쪽의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이 책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 ‘결정적 순간’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31번 환자가 신천지 교회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 먼저 등장한다. 이후 두 달간 대구에는 68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숫자 ‘31’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지난해 2월 이후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생활치료센터가 첫 등장한 순간도 적혀 있다. 이 교수는 “중수본 회의에서 ‘제발 병원이 아닌 곳에서 경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옵션과 지침을 내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가 탄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이다. 대구가 ‘코로나 도시’로 낙인 찍히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태도도 언급됐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비대면 국무회의 중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던 에피소드도 눈길을 끈다. 자택 대기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권 시장이 이 사실을 회의에서 알렸지만 별다른 대꾸가 없자 화가 나 자리를 떠났다는 얘기다.

시청 공무원들이 지쳐가는 모습도 상세히 묘사됐다. “한숨과 무표정한 얼굴, 충혈된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가끔은 울기도 하는 직원도 보였다”는 구절은 현실감이 넘친다.

이 교수는 “시청의 전화 한 통에 달려간 이유는 ‘가족과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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