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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상한 공시가…옆단지 아닌 1㎞밖 초역세권 값 반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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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올해 역대급으로 치솟자 '깜깜이 산정' 논란이 거세다. 서울 서초구 아파트와 건물들의 모습. 연합뉴스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올해 역대급으로 치솟자 '깜깜이 산정' 논란이 거세다. 서울 서초구 아파트와 건물들의 모습. 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주상복합 아파트 공시가격을 산정할 때 이 아파트에서 1㎞ 이상 떨어진 역세권 일반 아파트들을 인근 유사단지로 꼽아 그 단지들의 실거래가를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서초구 공시가격 논란 #시세산정에 참고한 아파트 살펴보니

서초구가 지난 5일 제주도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A 아파트(전용 80.5㎡)는 공시가가 실거래가보다 비싼 사례다. 지난해 마지막 실거래가는 12억6000만원인데 올해 공시가격은 15억3800만원으로, 시세 반영률(현실화율)이 122.1%에 달한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 기준일은 1월 1일이다. 서초구는 A 아파트처럼 현실화율이 100%가 넘는 아파트가 구 내에 3%(3758가구)에 달할 것으로 봤다.

서초구 공시가격 현실화율 100% 이상 사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서초구청]

서초구 공시가격 현실화율 100% 이상 사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서초구청]

이에 국토부는 다음날인 6일 긴급브리핑을 열고 반박에 나섰다. A 아파트의 실거래가가 시세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가격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 유사평형 단지의 거래 사례를 참고해 ‘적정 시세’를 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세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시세와 현실화율을) 다 이야기하면 형평성 논란이 있다”는 것이다.

대신 국토부는 시세 산정 시 참고한 인근 단지의 실거래가격을 공개했다. A 아파트 공시가격을 산정하기 위해 서초동의 가, 나, 다, 라 아파트의 실거래가격을 참조했고 이들의 가격은 18억~22억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비교하면 12억대인 A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터무니없이 낮아 현실화율(122.1%)이 높게 왜곡됐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A 아파트의 시세대로라면 현실화율은 70%대”라고 주장했다.

바로 옆 단지 제외하고 1㎞ 떨어진 초역세권 단지와 비교 

8일 중앙일보가 국토부 실거래가 현황과 공시가격 등을 분석한 결과 A 아파트는 ‘서초센트럴아이파크’로 나타났다. 2개 동의 아파트(318가구)로 지난해 9월 준공했다. 2호선 서초역에서 600m 가량 떨어져 있는 상업지다.

정부가 공시가 산정에 참고한 주변 단지 살펴보니.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가 공시가 산정에 참고한 주변 단지 살펴보니.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토부가 이 주상복합의 공시가격 산정을 위해 참고했다는 네 단지는 모두 일반 아파트다. 세 곳이 1㎞ 밖에 있는 유원서초(1993년도 준공), 서초교대e편한세상(2010년), 서초롯데캐슬프레지던트(2014년)다. 이 단지들은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지나는 교대역 역세권에 모여 있다. 서초구에서 인기가 높은 서일중·서운중 학군이다.

나머지 한 곳은 ‘마제스타시티힐스테이트’다. 2호선 서초역에 붙어 있는, 서초대로의 초역세권 단지다. 서초구의 부동산 공시가격 검증단 측은 “마제스타시티 단지 옆 정보사 부지는 한국의 실리콘밸리이자 문화업무지구로 개발될 예정인 곳"이라고 말했다.

국토부가 시세 산정에 참고한 역세권 아파트보다 서초센트럴아이파크에 더 가까운 아파트 단지도 있다. 이들의 마지막 실거래가격은 역세권 단지보다 훨씬 낮았다. 공시가격을 올리려고 작정하고 인근 단지 대신 역세권의 비싼 아파트와 비교한 것 아니냐는 검증단의 지적이 나온다.

서초센트럴아이파크에서 약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서초e편한세상2차아파트’(2005년 준공)는 전용 84㎡ 기준으로 지난해 6월(1층) 14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올해 예정 공시가격은 서초센트럴아이파크보다 4억원가량 낮은 11억2000만원이다.

이 단지 위쪽으로는 ‘서초한빛삼성’(1999년)의 경우 전용 99㎡ 기준으로 지난해 15억~16억 원대에 거래됐다. 올해 공시가격은 서초센트럴아이파크보다 3억원 낮은 12억2200만원이다. 주변 단지의 지난해 실거래가와 이를 토대로 산정한 올해 공시가격이 현저히 낮다.

또한 주상복합아파트는 일반아파트보다 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시세가 인근 일반아파트 시세의 80%선인 것이 대표적이다. 서초센트럴아이파크 단지와 바로 인접한 서초아트자이(주상복합) 전용 144㎡의 경우 지난해 실거래가가 16억2000만~19억원이다. 서초센트럴아이파크 전용 80㎡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집이다.

방배동 나홀로 아파트 시세 산정에 10개 동 아파트 참고

서초구 검증단은 서초동 사례만이 아니라 우면동, 잠원동, 방배동 등에서도 실거래가 비교 단지가 적절치 못하다고 진단했다. 중앙일보 분석 결과, 서초동만큼 현실화율이 높았던 방배동 D 아파트는 ‘월드빌라트’다. 1994년에 준공된 이 아파트는 1개 동짜리 나홀로 아파트(19가구)다. 서초구는 지난해 10억7300만원에 거래된 이 아파트(전용 261.49㎡)의 공시가가 13억6000만원으로, 공시가가 시세보다 더 비싸다(현실화율 126.8%)고 밝혔다.

국토부가 이에 반박하며 시세 산정을 위해 실거래가를 참고했다고 밝힌 방배동 단지는 ‘래미안방배아트힐’이다. 2004년에 준공한 이 단지는 10개 동 588가구 규모로 ‘월드빌라트’에 비교하면 대단지다. 지난해 12월 실거래가는 24억원(174.5㎡)이다. 월드빌라트의 마지막 실거래가보다 약 13억원 높다.

이런 대단지보다 규모가 작은 아파트가 바로 옆에 있다. 64가구 규모(2개동)의 ‘방배어울림아파트’이지만 지난해 실거래가 기록이 없다. 실거래가 많은 대단지 아파트를 나홀로 아파트와 단순 비교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조은희 "합동조사단 구성해 공동조사하자"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왼쪽)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정부의 불공정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왼쪽)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정부의 불공정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산세 부과 등 63개 행정지표와 직결되는데도 공시가격은 ‘깜깜이 산정’ ‘들쭉날쭉 산정’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 이의신청은 사상 최대로 치솟을 전망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반 지역의 단지 시세 산정을 위해 초역세권 아파트와 비교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국토부의 시세 산정 근거가 너무 널뛰어 신뢰하기 어려운 상태인 만큼 산정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서초구가 산정 오류 의심건수라고 제시한 1만건부터 국토부와 서초구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공동조사를 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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