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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뱀장어 '이 놈' 때문에 씨가 마른다, 30cm 괴생물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 행주대교 아래 한강하구 행주나루터. 나루터 옆엔 소형 어선 10척이 정박해 있었는데 어부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강에서 걷어 올린 대형 그물 옆 풀밭에는 괴생물체이자 유해생물인 ‘끈벌레’가 무더기로 버려져 있었다.

어부 김홍석씨는 “강에 끈벌레가 넘쳐나면서 어부들의 봄철 주 소득원인 실뱀장어 잡이를 몽땅 망쳐버려, 강에 쳐두었던 대형 실뱀장어 그물을 사흘 전 아예 걷어 올리고 일손을 놓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는 “요즘 조업에 나서면 그물 한 개에 5∼10㎏가량 끈벌레가 걸려 나온다”고 했다. 끈벌레는 지렁이와 비슷한 형태의 20∼30㎝ 길이다. 김씨는 “끈벌레 무더기 사이에 가느다란 실 모양을 한 길이 5㎝ 정도 크기의 실뱀장어 100∼200마리만 섞여 나온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끈벌레(오른쪽)와 죽은 실뱀장어(왼쪽). 전익진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끈벌레(오른쪽)와 죽은 실뱀장어(왼쪽). 전익진 기자

그물 올리면 끈벌레만 가득

김씨는 “하지만 끈벌레에서 나온 점액질로 인해 실뱀장어 가운데 95%가량은 폐사한 상태로 올라와 어민 50여명 중 상당수가 연중 최대 황금 조업기인 실뱀장어 철에 일손을 놓다시피 하는 실정”이라며 허탈해했다. 그는 “끈벌레로 인해 연간 소득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봄철 실뱀장어는 이젠 눈앞에 두고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고양 지역 어부들에 따르면 한강 하구의 유해생물이자 괴생물체인 끈벌레가 올봄에도 또다시 대거 출현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2주가량 이른 지난달 중순부터 행주대교 일대 한강하구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수온이 올라가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옆 풀밭.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끈벌레. 전익진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옆 풀밭. 실뱀장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끈벌레. 전익진 기자

잡히는 실뱀장어 95% 폐사  

집중 발견지점은 한강 하류인 고양시 행주대교에서 신곡수중보 사이 15㎞ 구간이다. 끈벌레는 예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뱀장어 철인 오는 6월까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어부들은 전망한다.

끈벌레는 2013년 한강 하구에 나타나면서 국내에 처음 보고된 바다에 사는 신종 유해 생물이다. 신경계 독소를 뿜어내 마비시키는 방법으로 환형동물, 갑각류, 연체동물 등 어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강한 포식성에 이동성이 좋아 모래나 펄 속, 해조류 사이, 바위 밑에 서식한다.

어부들 “서울시 2곳 하수·분뇨처리장 방류수 탓”

심화식 한강살리기어민피해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수년간 한강 하류에서 발생하는 끈벌레 집단 출현은 상류의 한강으로 오염된 방류수가 유입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행주대교 기점으로 한강 상류 6∼7㎞ 지점에 있는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에서 한강으로 배출하는 오염된 방류수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신곡수중보로 물길이 가로막히는 행주대교 일대에서 끈벌레가 봄철마다 대규모로 출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는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수·분뇨처리장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강에서 걷어올려 놓은 실뱀장어 그물. 전익진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 강에서 걷어올려 놓은 실뱀장어 그물. 전익진 기자

서울시 “하수처리장 방류수는 매우 깨끗”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로 인해 끈벌레가 출현했다는 어민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고 지나치다”며 “하수처리장에서 방류 중인 하수 수질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농도 10ppm 이하로 매우 깨끗하게 정화된 상태다. 끈벌레 발생 원인으로 하수처리장을 꼽는 것은 단순히 심정적인 결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고양시 “용역 결과 ‘높은 염도’ 원인으로”  

고양시 관계자는 “2016년 8월 3억7000만원을 들여 끈벌레 발생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한강 수질과 끈벌레류 발생 원인 규명 및 실뱀장어 폐사 원인 등 어업피해 영향 조사용역’을 인하대 산학협력단에 맡겼다”며 “2018년 11월 말 나온 최종 보고서에서 끈벌레 발생 원인에 대해 ‘높은 염도’가 가장 유력한 끈벌레 발생 요인으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전익진 기자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전익진 기자

어부들은 이런 행정기관 입장과 용역조사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강살리기어민피해비상대책위는 고양시에 낸 의견서에서 “강의 높은 염도가 끈벌레 출현의 원인이라면, 한강과 마찬가지로 강물과 해수가 섞이는 수역인 ‘기수 역’이 있는 낙동강, 영산강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한강 행주 어장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어민대책위 “정부 차원 원인조사 필요”  

심화식 한강살리기어민피해비상대책위원장은 “연구용역 후에도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납득할 만한 원인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인 점을 볼 때 한강이 국가하천인 만큼 정부 차원의 정확한 원인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하류 생태계 파괴를 막고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끈벌레를 신속히 퇴치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끈벌레 수매 긴급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전익진·최은경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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