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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지나서야 "나도 맞겠다"…한발 늦은 정은경 '백신 타이밍'

중앙일보

입력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참관을 위해 서울 마포구보건소를 방문해 백신 접종을 받는 김윤태 푸르메 넥슨어린이 재활병원 의사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참관을 위해 서울 마포구보건소를 방문해 백신 접종을 받는 김윤태 푸르메 넥슨어린이 재활병원 의사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3일 요양병원·요양원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접종을 포기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동의율이 되레 떨어지고 있어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동의율이 역주행하는 이유는 AZ백신 불신이 좀체 걷히지 않아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늦게 접종했고, 방역당국이 AZ백신의 노인 접종을 두고 혼선을 드러낸 게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1일 접종에 나선다. 하지만 정 청장 접종도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접종 시작 34일 후에 맞는다. 미국의 방역책임자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지난해 12월 접종 시작 8일만에 모더나 백신을 맞았다.

31일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요양병원·요양원 AZ백신 접종 동의율은 74.9%이다. 지난달 22일 접종 시작 직전 동의율(76.9%)보다 떨어졌다. 그동안 당국은 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 등을 알리며 접종을 독려했지만 동의율은 오히려 역주행했다. 접종하려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생긴다. 접종 순위가 연말 최후순위로 밀리는 걸 각오하고 포기한다.

한국노인복지중앙회 권태엽 회장이 운영하는 서청주노인요양원에서는 며칠 새 3명이 접종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 권 회장은 "취소 이유를 물었더니 주사 맞고 사망하느니 코로나 걸려서 사망하는 게 낫다고 하더라"며 "안 맞겠다던 사람이 다시 맞겠다는 경우는 없고, 취소자만 나온다"고 말했다.

요양시설 중 동의율이 극도로 떨어지는 곳도 있다. 대구광역시 상록수실버타운 입소 노인 120명 중 20명(16.6%)만 AZ백신 접종에 동의한 상태다. 반면 화이자 접종 시설은 분위기가 다르다. 김후남 원장은 "주간보호센터의 75세 이상 노인은 화이자 백신 대상이다. 50명 중 49명(98%)이 동의했고 곧 접종한다"며 "AZ백신 대상 어르신의 자녀들이 결정하는데, 접종을 독려해도 설득이 안 된다. AZ백신 불신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대구 지역의 요양원의 동의율이 대략 30%에 머무는 것 같다"며 "자녀들 일부는 요양시설에 입소한 어르신들은 외부와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백신을 굳이 맞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양병원·요양원의 노인들은 코로나19의 최고 위험대상이다. 그래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가장 먼저 접종했다. 하지만 한국은 AZ백신의 65세 이상 효과를 입증하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보건 당국이 접종을 배제했다가 이를 번복한 바 있다.

김태년 민주당 대표직무대행을 비롯한 여권 정치인들이 백신 불신을 야기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가세했다. 이런 게 쌓여서 '접종 동의율 역주행'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일 오전 11시께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보건소에서 발열 체크와 예진을 거쳐 AZ백신 접종을 받는다. 지난 23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보건소를 방문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받았으며, 이어 26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근본적으론 AZ에 대한 세계적인 불안이 있다. 그런데 방역당국이 AZ 백신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실패한 건 맞다. 정은경 청장도 한달이나 지난 뒤에 맞을거라면 진작 맞지 왜 그렇게 눈치를 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비판이 이어진다.

"정 청장의 접종은 초기에나 효과가 있었다. 지금 해봐야 누가 관심을 가질지 모를 일이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야 나을 거다. 소통 전문가가 질병청에 없는 것 같다. 왜 안 맞느냐는 지적 나오자마자 바로 맞았어야 한다. 안 맞을 거라면 '내가 하나라도 아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맞추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으면 모를까. 그냥 멍하니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국민 마음을 잘 읽어야한다. 정확하게 읽고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 질병청 조직 내에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 없다."

신성식·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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