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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편의점" "AI번역"에 흔들린다, 박영선의 'AI 공든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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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블록체인 기반 KS 코인 운용’, ‘프로토콜 경제 등 신산업 육성’, ‘AIㆍ5Gㆍ블록체인ㆍ빅데이터가 융합된 첨단 경제도시 조성’….

공약엔 정보통신기술 용어 가득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경제 대전환’ 공약엔 정보통신기술(ICT) 용어가 가득하다. 경제 분야뿐 아니라 ‘여성을 위한 AI+IoT 안심 Zone 구축’(여성),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기념품 발행’(문화) 등 공약 전반이 4차 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8년 1월 30일 박영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중구 더프라자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소피아에게 묻다' 콘퍼런스를 열고 AI 로봇 소피아와 일대일 대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8년 1월 30일 박영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중구 더프라자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소피아에게 묻다' 콘퍼런스를 열고 AI 로봇 소피아와 일대일 대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 후보의 과거 이력(지리학 전공, 기자 출신)만 놓고 보면 ICT와는 거리가 멀지만, 국회에서 로봇기본법을 최초로 발의(2017년 7월)한 게 그다. “전자적 인격체로서의 로봇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비하려는 것”이라는 취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홍콩 로봇제조업체의 AI 로봇 소피아가 인류사 최초로 시민권(사우디아라비아)을 얻었고, 이듬해 1월 박 후보는 서울에서 소피아 초청 행사를 열고 일대일 대담을 했다.

2019년 4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지금의 공약이 구체화했다. 박 후보의 주요 공약인 ‘프로토콜 경제’는 블록체인 전문 투자 스타트업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가 2017년 처음 주장한 단어다. 대기업의 플랫폼 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제를 뜻한다.

지난해 7월 15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경기도 평택 소재의 스마트팜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5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경기도 평택 소재의 스마트팜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또 수직 정원 공약은 ‘스마트팜’을 기반으로 하는데, 박 후보는 중기부장관 시절 경기 평택의 스마트팜을 직접 시찰하는 등 관심을 가져왔다. 공약 수립에 관여한 박 후보 관계자는 “박 후보는 장관 시절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고, 거기서 공감한 아이디어를 공약으로 구체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출마를 목전에 앞둔 지난해 11월엔 김서준 대표를 비롯해 스마트팜 업체 그린랩스의 신상훈 대표, AI 자막 번역 서비스 제공 업체 보이스루의 이상헌 대표 등을 초청해 ‘컴업2020’이라는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출마 선언 후에도 박 후보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조언을 얻어 KS 코인 공약을 새로 내놓는 등 현재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20일 박영선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프로토콜경제 구현하는 스타트업과의 대화'를 마친 후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왼쪽부터) 이상헌 보이스루 대표,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 박영선 장관, 김서준 해시드 대표,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 양주동 PSX 대표, 차정훈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지난해 11월 20일 박영선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프로토콜경제 구현하는 스타트업과의 대화'를 마친 후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왼쪽부터) 이상헌 보이스루 대표,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 박영선 장관, 김서준 해시드 대표,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 양주동 PSX 대표, 차정훈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 사진=중소벤처기업부

그렇게 해서 완성된 공약을 기반으로 박 후보는 자신을 준비된 미래 시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야권 단일화 후보로 결정되자 박 후보는 바로 “‘서울의 미래 박영선 시장이냐, 낡고 실패한 시장이냐’ 이제 구도가 확실해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과정만 놓고 보면, ICT 강조가 오히려 약보단 독이 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식 선거 운동 첫날(지난달 25일)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꺼냈던 “무인 슈퍼” 발언은 “아르바이트 구하기 힘든 청년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발언”(김철근 오세훈 캠프 대변인)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튿날인 지난달 26일엔 통번역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보이스루를 추천했다가 논란이 증폭됐다. “일자리를 모두 반으로 결딴내는 것이 꿈이 아니라면, 가는 곳마다 무인점포니 통번역 AI니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이준석 오세훈 캠프 뉴미디어본부장)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YTN 돌발영상에서 소개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 유세 현장. YTN 캡처

지난달 29일 YTN 돌발영상에서 소개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 유세 현장. YTN 캡처

박영선 캠프에선 “보이스루는 통번역 전문가 및 프리랜서들의 일거리를 늘려주는 플랫폼 서비스”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에선 여전히 “슬로건을 ‘사람보다 AI가 먼저다’로 바꾸시면 언행일치에 대해 국민적 공감은 얻을 수 있겠다”(지난달 31일, 박기녕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부대변인)라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업계에선 그러나 박 후보의 미래 비전 구상 노력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후보가 장관 시절 만났던 스타트업 관계자는 “그간 정치계에선 블록체인을 사기쯤으로 치부해왔다. 글로벌 흐름에서 우리만 위축되는 기간이 너무 길었는데, 박 후보가 장관 시절 치열하게 공부하며 독려해왔다. 적어도 그런 노력이 조롱 대상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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