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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묶어놓고 신도시 띄우더니 투기장 전락”…LH가 불당긴 ‘도시재생 중단’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1500억원을 도시재생사업에 썼다고 하는데 45년 동안 창신동은 달라진 게 없다. 슬럼화만 진행되고 있다” (유덕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신도시 땅 투기 사건을 계기로 그간 재개발되지 못했던 도시재생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주택 공급이 필요한 서울 내 도심지는 정작 도시재생지역으로 묶어두고 시 외곽에 신도시를 개발했지만 결국 개발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LH직원, 소수 공무원의 ‘투기장’으로 전락한 건 부당하다는 게 핵심이다.

“제한된 정보 가진 자들만 부당 이익”

29일 도시재생 해제 및 재개발 추진지역 연대 11지역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도시재생사업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허정원 기자.

29일 도시재생 해제 및 재개발 추진지역 연대 11지역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도시재생사업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허정원 기자.

 ‘도시재생 해제 및 재개발 추진지역 연대 11지역(연대 11지역)’은 29일 서울 중구 시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시재생사업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그간 낙후된 도심은 개선하지 않고 서울 외곽에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베드타운을 만들려고 하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며 “그러나 이번 LH 땅 투기 게이트로 제한된 정보를 가진 자들만 보다 쉽고 저렴하게 토지를 선점해 부당한 이익을 창출하는 투기를 위한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은 노후한 주거지역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사업으로 지역주민이 함께 계획하고 지역의 역사·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사업이다. 도시재생기업(CRC) 등 해당 지역에 토대를 둔 사회적 경제조직이 주축이 되는 게 특징이다. 서울시 역시 “사람 중심, 지역 고유의 정체성 강화가 도시재생사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2019년 6월 기준 총 52개 지역이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됐다.

“도시재생 체감 못 하겠다…슬럼화만 가속”

지난 2017년 8월말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의 모습. 김경록 기자.

지난 2017년 8월말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의 모습. 김경록 기자.

그러나 정작 도시재생 대상 지역 주민들은 “천문학적인 혈세가 들어갔다는데 어떻게 동네가 변했는지 전혀 체감을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덕 위원장은 지난 2014년 도시재생 1호로 선정된 종로구 창신동에서 45년간 살아온 주민이다. 그는 “중학교 때 이후로 동네가 변한 게 별로 없다”며 “도시재생사업으로 확충된 인프라는 미미한데 개발이 안 되다 보니 집이 비어도 사람이 안 들어온다. 동네가 점점 우범지대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참여를 강조했지만 3만명이 넘는 주민 중 주민 협의체에 참여하는 건 190명 남짓”이라며 “이 동네에 역사 보존할 게 뭐가 있느냐. 달라진 거라고는 봉제박물관이 만들어진 것뿐인데 이는 주민의 삶과 관련도 없다. 6년간 도시재생을 해 이 정도인데 얼마나 더 오래 변화를 기다려야 하나”고 말했다.

서울 숭인동, 동자동, 서계동, 장위 11구역, 수색 14구역, 자양 4동, 일원동 대청마을, 구로 1구역과 성남시 태평2·4동, 수진2동 등 주민도 “도시재생지역을 해제하고 재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원동 대청마을 주민은 “하루속히 종 상향(용적률 상향)을 추진해 '강남의 달동네'라는 오명을 벗어나고 싶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매년 25만호 짓는다면서…도심 제외”

서울특별시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달 창신동 공공재개발 정비사업 추진위가 "재개발 공모 대상에서 도시재생지역을 제외한 건 부당하다"는 취지의 취소청구를 기각했다. 재정의 중복 투입은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회]

서울특별시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달 창신동 공공재개발 정비사업 추진위가 "재개발 공모 대상에서 도시재생지역을 제외한 건 부당하다"는 취지의 취소청구를 기각했다. 재정의 중복 투입은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회]

이들 지역 주민이 거리로 나선 건 해당 지역이 공공재개발 대상지에서 제외된 영향도 있다. 서울시는 ‘2023년 이후 수도권에 연평균 ‘25만호 α’ 수준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정부의 5·6부동산 대책에 따라 공공재개발 후보지를 선정했지만, 기존 도시재생 사업지는 모두 공모 대상에서 제외했다. 창신동 공공재개발 준비위원회 등은 종로구를 상대로 취소청구 행정심판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미 재정이 투입된 도시재생지역에 재정을 중복으로 지원하는 건 낭비”라는 취지로 기각됐다.

이에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는 “애당초 일방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해놓고 재정을 지원해줬다는 건 부당하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인다. 다른 지역도 소송에 참여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날 연대 11 지역 관계자는 “더는 소수의 땅 투기를 위한 신도시 개발, 정치적 명분에 사로잡힌 도시재생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에게 필요한 실질적 거주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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