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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與 ‘투기 이익 소급 몰수’ 카드에…“위헌 소지 크다”

중앙일보

입력

여당이 꺼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직자 투기 이익 소급 몰수 방안에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법적 효력을 과거로 소급하지 않는다"는 헌법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부당 이익'에 대한 경계도 모호해 실효성도 미지수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성난 민심에 대한 국면 전환용 카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3.29/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3.29/뉴스1

홍익표 “부동산 투기 이익 소급 몰수 법안 발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이익을 소급해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홍 의장은 “구체적으로 부동산 차명 거래나 부당한 방법으로 토지 보상을 받는 경우, LH 임직원이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한 경우 등을 새롭게 규정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당·정·청은 과거 LH 직원의 투기 이익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소급 입법 방침을 밝혔다.

이는 법에서 정한 법률불소급 원칙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13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 입법에 의해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정했다. 또 형법 1조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투기 행위’ 당시의 법률에 처벌 조항이 없는데 사후에 법을 만들어 소급 처벌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정부,부동산투기근절대책발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부동산투기근절대책발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소급 적용 매우 어려워…실효성도 미지수”

당초 여당이 이 같은 소급 입법을 추진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국토법안심사소위원장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몰수나 추징, 형벌의 소급이 인정되는 것은 친일 재산이나 부패 재산 같은 것”이라며 “당시 처벌하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소급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조 의원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며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심사 때 소급 입법 조항은 빠졌다가 나흘만인 28일 여당이 다시 꺼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당 내부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듯 소급 입법은 위헌 소지가 크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 정도가 인정받은 예외일 정도로 소급 적용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워낙 크니 보궐선거를 앞둔 여당이 입장을 바꿔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정치적 시도”라고 평가했다.

실효성도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몰수대상 토지 부당이득의 가액산정, 시점 등이 특정돼야 하지만 쉽지 않아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제된 정부 방침을 내놓아야 하는데 여론을 의식해 ‘쎈 대책’만 마구 내놓고 ‘디테일’은 부재하다”며 “소급 입법을 마련하더라도 실제 집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지검 순천지검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위헌 시비만 낳고 실효성 없는 대책에 집착하지 말고 보다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반부패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왼쪽부터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홍 부총리.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왼쪽부터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홍 부총리. 연합뉴스

홍남기 “기존 규정 최대 활용해 환수”

이런 논란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 주재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 이후 브리핑에서“기존 규정을 최대한 활용해 부당이득을 환수할 예정”이라며 “현재 부패방지권익위법에 의하면 범죄에 관련되는 재물과 이득에 대해서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도 여당이 제안했는데 국회에서 최대한 헌법에 배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당 이득을 환수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협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공직자가 부동산 투기로 부당 이익을 얻을 경우 최대 5배를 환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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