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당뇨 재앙 방치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당뇨병 증세를 느껴 병원을 처음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이미 7~10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온 사람들입니다. 이 중 상당수는 합병증이 있습니다."

가천의대 내분비내과 박이병 교수는 우리 국민이 당뇨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른 채 병을 키우고 있다고 개탄했다.

당뇨병은 생활습관만 고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또 병에 걸렸더라도 완치는 어렵지만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증세 호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환자들은 대부분 이런 기회를 놓치고 합병증까지 얻고서야 병원을 찾는다.

2002년 발표된 'CODE-2'라는 유럽 8개국의 공동 연구논문에 따르면 당뇨 합병증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약 2.5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콩팥 등이 나빠 혈액투석을 해야 할 경우 비용은 11배로 치솟았다. 아주대 내분비대사내과 김대중 교수는 "혈액투석 환자의 20~30%는 실명까지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렵다"면서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당뇨병 환자수가 400만 명을 넘어서고 증세가 심각한 환자가 많아진 데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정부가 당뇨병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예방에 주력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30여 년간 수만 명의 당뇨 환자를 치료해온 허갑범(전 연세대 의대 교수) 박사는 "의료기관을 찾지 않은 환자 숫자를 더하면 훨씬 더 많을 텐데 정확한 현황 통계조차 없다"며 정부 정책의 부재를 지적했다. 지난 1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대한당뇨병학회는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열고 당뇨병에 대한 기초통계라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기초통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당뇨병에 대한 홍보와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예산부족 탓만 하고 뒷짐을 지고 있기에는 당뇨병 환자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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