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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신해 바이든 공격···러·중과 손 잡은 터키 에르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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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중앙포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중앙포토]

 "터키의 민주주의 후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가 우려스럽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의에서 한 얘기다. 유럽과 '대서양 동맹' 복원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터키를 사실상 '공동의 위협'으로 지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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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멤버로 냉전 시절 미국의 동맹국으로 소련을 견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터키는 러시아에 이어 중국과도 밀착하고 있다.

터키의 이런 행보의 이끄는 인물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7) 터키 대통령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대표적인 '스트롱맨(철권통치자)'으로 꼽힌다.

동병상련에서였을까. 그는 지난 19일 푸틴을 대신해 바이든을 공격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테러를 비난하며 푸틴을 '살인자'로 지칭하자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비난한 것이다. 그러면서 푸틴에 대해선 "현명하고 우아하게 대응했다"고 칭찬했다.

2003년 이후 터키 총리, 대통령으로 18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은  '21세기 술탄'으로도 불린다. 그가 정상 자격으로 만난 한국 대통령만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 네 명이다. 게다가 2017년 개헌으로 최장 2034년까지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해졌다.

2018년 한국을 국빈 방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한국을 국빈 방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무소불위의 통치 방식도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9일 중앙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올렸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경질한 게 대표적이다. 그 충격에 터키 리라화가 가치가 장중 17% 급락,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기도 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지난 2년간 갈아치운 외환 당국 수장만 3명이다.

지난 20일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이스탄불 협정에서 갑작스레 탈퇴했다. 핵심 지지층인 이슬람 강경파가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때 터키의 '경제 총리', '무슬림 민주주의'를 꽃피운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에르도안은 왜 이렇게 돌변했을까.

거리서 빵 팔던 소년

회견에 나선 에르도안 대통령. [AP=연합뉴스]

회견에 나선 에르도안 대통령. [AP=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아버지는 흑해 해안경비대 선장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자랐는데, 가난한 가정환경 탓에 10대 시절부터 거리에서 음료와 빵을 팔아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하지만 일찍부터 정치적 야심을 키웠다.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 초 이슬람 청년 구국당(MSP)의 회장으로 선출됐다. 1981년 이스탄불 마르마라 대학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고 준프로 축구단에 잠시 몸담았다.

대학 시절 네지메틴 에르바칸(터키 초대 총리)과의 만남이 그를 본격적인 정치의 세계로 이끌었다. 1980년 군사 쿠데타 이후 에르바칸을 따라 복지당에 가입해 이스탄불 당 조직을 돌보며 성장했다.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돼 일자리 확대, 시 재정난 해소 등의 성과를 내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경제 총리'로 인기 구가 

2010년 코엑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앞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2010년 코엑스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앞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이스탄불 시장 시절 카페에서 술 판매를 금지해 세속주의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1차 대전과 함께 오스만제국이 멸망하고 등장한 터키 공화국은 케말리즘(터키 국부가 기초를 놓은 세속주의)을 표방하며 이슬람권 중 가장 먼저 시장 경제를 도입한 바 있다.

에르도안은 이런 분위기에서 강한 이슬람적 색채를 드러내 독실한 무슬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낭패도 봤다. 1997년 12월 터키 남동부 도시 시이르트에서 케말리즘에 반하는 서적을 읽은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에르도안은 정치적 재기를 위해 변신을 꾀한다. 2001년 경제학자 출신인 압둘라 귤과 함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온건한 이슬람 정당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장기 집권 중인 정의개발당(AKP)이다. AKP는 이듬해 선거를 휩쓸었고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에 취임해 터키 실권자의 자리에 올랐다.

총리 시절 에르도안은 '경제 총리'로 불렸다.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을 10년간 3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도 성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터키 국회를 방문해 에르도안 총리를 터키의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지도자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중견국으로서 터키의 외교적 영향력도 확대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 이란 핵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에르도안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직후 브루킹스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선 아랍인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뽑히기도 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터키 최초로 3연임 총리가 됐다.

금으로 치장한 대통령궁 

2016년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과 터키 이스탄불의 대통령궁에서 만난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AP=연합뉴스]

2016년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과 터키 이스탄불의 대통령궁에서 만난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AP=연합뉴스]

하지만 이 시기 이미 그는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만드는데 착수한다. 언론을 서서히 장악하고 치밀하게 정적을 숙청했다. 본색은 인기를 구가하던 3연임 총리 시절부터 드러났다. 평화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일인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AKP를 함께 키워온 당내 온건파도 축출했다.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재미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과 2013년 결별하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까지 군부, 정계, 법조계, 언론계에서 모두 몰아냈다.

총리직 4연임은 헌법상 불가능했다. 그러자 그는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이 될 토대를 마련했다. 그렇게 터키는 2014년 처음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터키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이 돤 에르도안은 초호화 대통령궁부터 만들었다. 여의도보다 큰 부지에 건물은 금과 최고급 건축 자재로 꾸몄다. 화장실 벽지 가격은 한 롤에 2000파운드(약 311만원), 7만2000파운드(약 1억 1225만원)짜리 문짝 세트가 수백개의 방마다 달렸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황금 욕심이 무색할 정도"라는 평가도 나왔다. 에르도안의 부인 에민 여사는 해외에서 대형상점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나홀로 호화쇼핑'을 즐겼다.

2016년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 강화에 반발한 군부 쿠데타가 발발해 위기를 맞기도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에르도안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헌법 개정에 시동을 걸었다. 위기를 종신 집권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술탄'의 부활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0년 터키 앙카라의 국회에 도착해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0년 터키 앙카라의 국회에 도착해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결국 2017년 개헌으로 에르도안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오스만제국의 술탄(세속 정치와 종교 지도자를 동시에 겸하는 군주)이 부활했다고 서구 언론들은 평가했다.

더이상 걸림돌이 없어지자 '마이웨이' 통치 방식은 더욱 노골화한다. 국내적으로는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며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다. 공공기관에서 히잡을 착용하도록 허용하고 학교 내 이슬람 교육도 강화했다.

'차르-황제-술탄' 연합 뜨나

에르도안 대통령,[AFP=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AFP=연합뉴스]

대외적으로는 오스만튀르크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신 오스만주의'에 기반한 팽창정책을 추진했다. '탈 서방' 행보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이란과도 본격적으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스트롱맨'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도 적절히 활용했다. 해외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싶어하던 트럼프에 "터키가 대신 중동의 경찰이 되겠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터키가 '러시아의 사드'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S-400을 들여오면서 결국 트럼프와도 척을 지게 된다. 미국은 NATO 회원국인 터키가 S-400을 쓸 경우 미국을 비롯한 NATO의 군사정보가 러시아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터키는 결국 도입을 강행했고, 지난해 말 트럼프는 터키 관련 인사들을 제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해졌다. 에르도안은 바이든 취임 이후 아직 전화 통화도 하지 못하고 있다.

25일 그는 터키를 방문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다. 같은 튀르크계인 중국 내 위구르족 탄압 문제가 불거지며 터키 내 반발 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서다. 터키 관영 총신은 터키 측이 왕이에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요청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결국 서방 대 '차르(푸틴)-황제(시진핑)-술탄(에르도안)'의 구도가 짜이는 걸까.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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